() ()海人(해인)
() ()()()
노래 ()()()

紹介(소개)[編輯]

()海人(해인)作詞(작사)하고 ()()()作曲(작곡)한 <感激(감격)時代(시대)>의 家事(가사)靑春(청춘) 禮讚(예찬)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노래에서 描寫(묘사)한 거리는 “氣分(기분) 좋은 微風(미풍)이 부는 歡喜(환희)의 거리”이고, 바다도 “情熱(정열)이 넘치는 靑春(청춘)의 바다”이다. 하지만 노래에서 志向(지향)하는 “希望(희망)垈地(대지)”와 “幸運(행운)의 뱃길”은 누구나 쉽고 便()하게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3()에 나와 있듯 “꽃 피는 마을”에 到達(도달)하려면 “언덕”이라는 障礙物(장애물)을 넘어야 한다. 게다가 1()의 “불러라”와 2()의 “저어라”에서 알 수 있듯이, 命令形(명령형) 歌詞(가사)는 듣는 이의 具體的(구체적)行動(행동)促求(촉구)한다, 家事(가사)만을 보았을 때 여기에서 日帝(일제)()讚揚(찬양)을 읽어 내기는 어렵다. 歌詞(가사)들 또한 日帝(일제)强占期(강점기)라는 悲劇的(비극적) 狀況(상황) 속에서 進取的(진취적)이고 樂觀的(낙관적)內容(내용)을 노래함으로써 日帝(일제)支配(지배)正當化(정당화)하고 帝國主義(제국주의)에의 熱情(열정)을 북돋우는 內容(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論辯(논변)한다. 예컨대 大衆(대중)藝術(예술)評論家(평론가)이자 聖公會(성공회)() 待遇敎授(대우교수)() 이영미 ()에 따르자면 이 노래는 “軍歌(군가)聯想(연상)시키는 ()한 트럼펫 演奏(연주)始作(시작)”될 뿐 아니라 “始終(시종) 前進(전진)煽動(선동)하는 雰圍氣(분위기)”이며, “()히 ‘希望峯(희망봉) 멀지 않다’나 ‘저 언덕을 넘어 가자’ ()에서는 鮮明(선명)煽動(선동)()을 드러낸다.” 라는 意見(의견)이 있다, 하지만 이에 反對(반대)하는 主張(주장) 또한 있다. 于先(우선) 2017() 2() 2() <한겨레>()記事(기사)에 따르면 옛 歌謠(가요) 사랑모임 ‘유정천리’의 副會長(부회장)인 이준희 ()는 ‘感激(감격)時代(시대)’ 가 發賣(발매)된 해인 1939()에는 音盤(음반)()强制(강제)軍國(군국)()요를 낸 적이 없다는 事實(사실)確認(확인)했다고 主張(주장)한다. ()感激(감격)時代(시대)’는 적어도 日帝(일제)指示(지시)()誕生(탄생)한 노래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于先(우선)感激(감격)時代(시대)’와 함께 收錄(수록)된 노래를 비롯하여 () 音盤(음반)()가 그 무렵에 發表(발표)한 노래들 가운데에서도 親日的(친일적)인 노래는 없다. 著者(저자)는 이어 노래에 드러나는 樂觀的(낙관적)雰圍氣(분위기)解釋(해석)에 따라 그 意味(의미)가 달라질 수 있는 것인 데다가 그 細部的(세부적)特性(특성)들이 單純(단순)日帝(일제)煽動(선동)相當(상당) 部分(부분) 결을 달리한다는 ()指摘(지적)하며 ‘感激(감격)時代(시대)’를 親日(친일)歌謠(가요)斷定(단정) 짓기 어렵다는 結論(결론)을 내리고 있다.

歌詞(가사)[編輯]

1()[編輯]

거리는 부른다 歡喜(환희)에 빛나는
숨쉬는 거리다 微風(미풍)은 속삭인다
불타는 눈瞳子(동자) 불러라 불러라
불러라 불러라 거리의 사랑아
휘파람 불며 가자 來日(내일)靑春(청춘)

2()[編輯]

바다는 부른다 情熱(정열)이 넘치는
靑春(청춘)의 바다여 旗발(깃발)은 펄렁펄렁
바람세 좋구나 저어라 저어라
저어라 저어라 바다의 사랑아
希望峯(희망봉) 멀지 않다 幸運(행운)의 뱃길아

3()[編輯]

잔디는 부른다 봄香氣(향기) 감도는
希望(희망)大地(대지)여 새파란 지평천리
白馬(백마)야 달려라 갈거나 갈거나
갈거나 갈거나 잔디의 사랑아
저 언덕 넘어 가자 꽃피는 마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