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文書: {| class="wikitable" |+ 槪述 |- ! '''LOGO''' | File:Samsung wordmark.svg |- ! 成立日 | 1938年8月1日 |- ! 類型 | 複合 企業, 企業 集團 |- ! 初代 總裁 | 李秉喆 |- ! 現 總裁 | 李在鎔 |- ! 賣出額 | 418兆 7,681億 원(2023年 基準) |- ! 營業利益 | 37兆 7,989億 원(2023年 基準) |- ! 市價 總額 | 632兆 9,323億 원(2023年 10月 基準) |- ! 公正資産總額 | 486兆 4,007億 원(2023年 基準) |- ! 職員 數 | 274,163名(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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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槪要 ==
[[大韓民國]]의 大企業이자 國內 最大 規模의 多國籍 企業이다. 資本總額 基準 財界 序列 1位로 그 外 時價總額, 賣出 等 企業 評價 要素의 거의 모든 領域에서 2位, 3位 그룹과 壓倒的 隔差를 보이고 있다.
== 歷史 ==
[[日帝强占期]] 時節인 1938年 3月, 協同精米所 主人이었던 [[李秉喆]]이 대구부 手動(現 [[大邱廣域市]] 中區 인교洞)에 '三星商會'를 開業한 게 본 그룹의 始初이다. 當時 29歲의 李秉喆은 慶尙南道 金海에서 農地 投機에 失敗한 後 心機一轉을 굳히며 資本金 3萬 원으로 三星商會를 세우게 되었다.
처음에는 農産物 販賣와 '別表국수' 販賣 等 가볍고 基本的인 것을 販賣했다. 後날의 三星그룹 形態와 比較하면 差異가 懸隔히 나는 便이다. 甚至於 雪糖과 肥料 팔던 時節 前의 얘기다. CJ그룹 前 名譽會長이자 李秉喆의 長男 이맹희가 回顧한 바에 따르면, 當時 三星商會는 只今의 三星과는 全혀 다른 모습이었으며, 국수 工場이 賣出은 늘었지만 정작 李秉喆 本人은 그 돈을 모두 工場 設備 投資에 쏟았고 李秉喆 一家 亦是 工場 귀퉁이에서 새우잠을 잤을 程度로 工場 狀態가 劣惡했다고 한다.[7] 그래도 別表 국수가 많이 팔려 賣出은 올라갔지만 大邱[8]에는 慶北에서 1位를 차지하는 소票 국수가 있었고, 2位의 楓菊産業도 있었다.[9] 結局 別表 국수는 이들의 牙城과 挑戰을 이기지 못해 廢業했다.
1942年 朝鮮兩朝를 引受해 事業 擴張의 발板을 마련한 後 1948年 서울 鍾路2街에서 趙洪濟와 함께 三星物産公社로 再出帆했다. 1950年 6.25 戰爭으로 臨時 首都였던 釜山으로 避難간 後 三星物産으로 使命을 變更했으며, 戰爭 以後 國家를 支拂保證人으로 세워 借款을 받아오면서 政經癒着을 통해 漸次 大企業으로 成長하게 되었다. 1953年 제일제당을 세워 처음으로 製造業을 始作해 國産 雪糖을 開發했고, 1954年 제일모직을 세워 國産 洋服地 '골덴텍스'를 開發해냈다.
1957年에 韓國 財界 史上 最初로 新入社員 公開 採用을 開始한 後 1958年 安國火災와 韓國興業銀行을 引受해[10] 金融業에도 처음 進出하고 이듬해에 韓國 財閥 中 最初로 祕書室을 設置해 企業集團으로의 模樣새를 갖추었다. 1963年에 동방生命(現 三星生命) 및 童話百貨店(現 新世界百貨店)을 세트로 引受했다. 1965年 [[中央日報]]를 創刊해 言論事業에도 進出하고 新聞用紙 自體 需給을 위해 새韓制止도 引受했다. 이렇게 順調롭게 擴張하며 三星은 50~60年代에 財界 1位의 자리를 차지했다.
그러나 1966年 사카린 密輸 事件으로 李秉喆은 韓國肥料를 國家에 半强制로 獻納하고 經營 一線에서 暫時 물러났으나, 1968年쯤 經營 一線에서 復歸한 後 電子産業 進出을 宣言하여 水原 工團敷地를 買入했고, 이듬해 삼성전자 및 三星-SANYO電氣를 세웠다. 以後 1970年 三星NEC를 세워 電子事業 擴張을 開始하며 1973年 제일합섬, 임피어리얼, 1974年 三星石油化學 等을 세우며 化學이나 觀光分野 等에도 領域을 擴張했고, 같은 해 韓國半導體를 引受해 半導體産業에 처음 손을 뻗었다.
1976年 本社를 태평로 신사옥으로 移轉하고 1977年 三星綜合建設을 세워 建設業에도 손을 뻗고 1979年에 三南 李健熙가 副會長이 되면서 2世 經營體制를 위한 발板을 마련했다.
1980年 韓國電子通信을 引受한 後 1982年 프로野球團 三星라이온즈를 創團하며 綜合硏修院을 열었고, 1983年 韓國 最初로 64K D램 開發에도 主導했다. 1985年 三星데이타시스템을 세워 電算事業에도 進出했고 1987年에 삼성종합기술원도 세웠다. 그해 11月 이병철이 死亡하자 李健熙가 家業을 이어받아 12月부터 會長이 됐고, 1990年代부터 親族分離를 進行해 1991年 신세계백화점과 全州製紙, 1993年 제일제당을 各各 分離시켰다.
1993年 이른바 '新經營 宣言'에 따라 로고와 企業 理念 等을 바꾸고 1995年 韓國 大企業으로는 最初로 小그룹 制度를 導入했으며, 同年에 삼성자동차를 세워 自動車 産業에도 進出했다. 그러나 1997年 外換危機로 인해 構造調整을 거듭 斷行해 2000年에 삼성자동차를 프랑스의 르노-닛산 얼라이언스에 賣却했다.
2000年代 半導體와 TV, 2010年代 스마트폰 市場 等에서 急成長을 거듭하며 國內 大企業 水準에서 글로벌 大企業으로 變身하는 것에 成功한다. 2001年에는 王子의 亂으로 空中分解된 현대그룹을 제치고 다시 財界 序列 1位로 다시 올라섰고, 2020年代까지 1位의 地位를 維持하고 있다.
2008年에는 西草 三星타운으로 本社를 移轉했다.
2014年 5月 李健熙가 急性 心筋梗塞으로 쓰러진 後 아들 이재용이 事實上 總帥 役割을 맡아 桐年度에 삼성종합화학 等 4個 石油化學 系列社를 한화그룹에 賣却했고, 2015年 (新)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役合倂海 '統合 三星物産'을 出帆시켰다. 2016年 三星精密化學과 三星SDI 케미컬事業部門을 롯데그룹에 팔고 2017年 2月 未來戰略室 解體를 宣言하였다. 이에 따라 系列社別 獨立/自律經營體制 轉換 手順을 밟게 되었으며, 그에 따라 本社를 三星타운에서 三星디지털시티로 移轉했으며, 三星그룹 公式 홈페이지도 門을 닫았다. 技士 라고 公式的으로만 말했을뿐 事實上 未來戰略室이라는 名牌만 땐거지 現在 삼성그룹의 中樞인 삼성전자에서 系列社 經營管理를 持續的으로 行하고 있다.
2017年 初 朴槿惠-최순실 게이트의 餘波로, 삼성그룹은 그룹의 經營을 總括하던 未來戰略室의 解體 計劃을 發表했다. 未來戰略室은 三星의 系列社(關係史)들을 垂直的 支配하는 組織으로서, 未來戰略室의 解體는 삼성그룹의 解體를 의미한다. 한便 삼성그룹은 未來戰略室 解體 後엔 系列社들이 各自 自律的으로 經營하는 體制로 轉換하게 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그룹 公採도 2017年을 끝으로 없어지고, 系列社別로 獨自的으로 採用하는 體制로 바뀐다고 하였다. 結局 2017年 4月 3日에는 三星그룹 公式 홈페이지와 블로그가 門을 닫았다. 이보다 앞선 2017年 3月 2日에는 그룹 사내 放送이 終了되었고, 3月 3日에는 그룹 記者室이 閉鎖됐다.
다만, 三星 關係社間의 持分關係는 如前하기 때문에 그룹이 解體된 것은 아니다. 三星은 如前히 公正去來委員會에서 發表하는 企業集團이며, 그룹 總裁 [[李在鎔]]이 實質 支配力을 行使한다.
== 브랜드 아이덴티티 ==
=== 名稱 ===
三星은 세個의 별을 뜻한다. 三星닷컴의 說明에 따르면 李秉喆 創業主의 비전인 ‘하늘의 별처럼 크고 强力하고 永遠하라’는 意味를 담고 있다. '三星이라는 이름에는 끝없는 擴張을 志向한다. 三은 크고 많은 것, 剛한 것이라는 뜻을 지녔기 때문에 우리 民族이 가장 좋아하는 數字며, 性은 밝고 높고 永遠히 깨이 빛난다는 意味'로 三星이라고 지었다고 한다.{{*|李秉喆의 自敍傳 [[湖巖自轉]] 34쪽에 홈페이지와 같은 內容이 적혀 있다. 아마도 湖巖字典의 內容을 그대로 홈페이지에 올린 듯 싶다.}} 2019年부터 三星은 使命의 意味를 함께하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힘을 象徵하는 數字 3에 꺼지지 않는 意志를 象徵하는 별이라고 쉽게 풀어 說明한다. 여기에 애니메이션 形式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글로 읽는 것보다 재미있게 理解할 수 있게 되었다.
[[로마字]]로는 'SAMSUNG'이라서 네티즌들이 '샘숭', '삼숭'이라고 놀리기도 하지만 實際 [[美國]]人들의 發音은 쌤썽에 가깝다. 本來 '三星'의 正式 로마字表記는 'SAMSEONG'이다. 西洋圈 外國人들 사이에서 別名은 'Sammy'이다. same soon이라고 三星 애플 訴訟戰 關聯하여 三星을 비꼬는 別名도 있다.
[[露西亞]]에선 {{ruby|삼숭크|Самсунг}}{{*| 元來 г 發音은 ㄱ과 類似하지만(正確히는 /g/임) [[露西亞語]] 發音 原則에 依據하면 有聲音이 單語 맨 뒤에 들어가면 無聲音으로 發音하기 때문이다.}}라고 稱한다.
[[日本語]] 公式 表記 및 發音은 {{ruby|삼무슨|サムスン}}{{*|가타카나 綴字가 何必 메트로이드 시리즈의 主人公인 社무스 아란(Samus Aran, サムス·アラン)의 이름(サムス)과 마지막 한 글字를 빼고 똑같은지라 日本 웹사이트를 飜譯機로 韓國語 飜譯하면 種種 뜬끔없이 '三星'이 튀어나오는 일이 있다.}}이다. 過去 ㅓ를 オ行으로 表記하는 慣例에 따라 サムソン이라 表記하기도 했는데 이러면 聖書 人物 삼손의 發音과 같아지는지라 三星 立場에선 이러한 이름으로 쓰이는게 企業 認知度와 三星에 關한 檢索의 容易性을 떨어뜨린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또한 基督敎가 非主流인 日本에서는 事實 삼손 하면 聖書의 人物보다도 同名의 게이 雜誌가 훨씬 認知度가 높기에, 成人物과 관계되는 것도 企業 立場에서 좋은 일이 아니다.
漢字로 三星(三星)이라 表記하는 境遇도 없지는 않으나, 이는 日本語로 '미쓰보시'라고 읽히기 때문에 미쓰이 그룹이나 미쓰비시 그룹과 混同되거나 다른 日本 企業으로 誤認될 수 있어 거의 쓰이지 않는다.
이와 關聯해서 '미쓰비시'와 비슷한 '미쓰보시'로 보이려고 '三星'이라고 지은 것이라는 嫌韓 루머가 있다. 다만 發音이 비슷하다는 것 外에는 根據가 別로 없고, 只今이라면 모를까 三星이 처음 생기던 때에 三星商會는 地方에서 작게 낸 農産物 販賣店이었으므로 미쓰비시와 競爭 關係도 아니고 取扱 品目도 相關이 없었다. 애初에 '三星' 自體가 韓國에서 地名으로 흔하게 쓰이는 말로, 創立 地域인 大邱 바로 옆 洞네인 慶山에 三星玄이 있다. 이병철이 直接 自敍傳에 밝힌 이름의 由來도 미쓰비시와는 無關하다.
[[中國語]]로는 漢字 三星을 中國語 讀音으로 읽어 '{{ruby|싼싱|Sānxīng}}'이라고 發音한다. [[中國]]에 進出하는 [[漢字文化圈]] 國家의 使命이 마찬가지로 漢字로 이루어져 있을 境遇 大部分 이런 慣例를 따른다.
[[分類:三星그룹]]

2024年5月18日(土)02時47分 基準 最新版

LOGO
成立(성립)() 1938()8()1()
類型(유형) 複合(복합) 企業(기업), 企業(기업) 集團(집단)
初代(초대) 總裁(총재) 李秉喆(이병철)
() 總裁(총재) 李在(이재)()
賣出額(매출액) 418() 7,681() 원(2023() 基準(기준))
營業利益(영업이익) 37() 7,989() 원(2023() 基準(기준))
市價(시가) 總額(총액) 632() 9,323() 원(2023() 10() 基準(기준))
公正(공정)資産(자산)總額(총액) 486() 4,007() 원(2023() 基準(기준))
職員(직원) () 274,163()(2023() 基準(기준))

槪要(개요)[編輯]

大韓民國(대한민국)大企業(대기업)이자 國內(국내) 最大(최대) 規模(규모)多國籍(다국적) 企業(기업)이다. 資本(자본)總額(총액) 基準(기준) 財界(재계) 序列(서열) 1()로 그 () 時價總額(시가총액), 賣出(매출) () 企業(기업) 評價(평가) 要素(요소)의 거의 모든 領域(영역)에서 2(), 3() 그룹과 壓倒的(압도적) 隔差(격차)를 보이고 있다.

歷史(역사)[編輯]

日帝(일제)强占期(강점기) 時節(시절)인 1938() 3(), 協同(협동)精米所(정미소) 主人(주인)이었던 李秉喆(이병철)이 대구부 手動(수동)(() 大邱廣域市(대구광역시) 中區(중구) 인교())에 '()()商會(상회)'를 開業(개업)한 게 본 그룹의 始初(시초)이다. 當時(당시) 29()李秉喆(이병철)慶尙南道(경상남도) 金海(김해)에서 農地(농지) 投機(투기)失敗(실패)() 心機一轉(심기일전)을 굳히며 資本金(자본금) 3() 원으로 ()()商會(상회)를 세우게 되었다.

처음에는 農産物(농산물) 販賣(판매)와 '別表(별표)국수' 販賣(판매) () 가볍고 基本的(기본적)인 것을 販賣(판매)했다. 後날(훗날)()()그룹 形態(형태)比較(비교)하면 差異(차이)懸隔(현격)히 나는 便()이다. 甚至於(심지어) 雪糖(설탕)肥料(비료) 팔던 時節(시절) ()의 얘기다. CJ그룹 () 名譽(명예)會長(회장)이자 李秉喆(이병철)長男(장남) 이맹희가 回顧(회고)한 바에 따르면, 當時(당시) ()()商會(상회)只今(지금)()()과는 ()혀 다른 모습이었으며, 국수 工場(공장)賣出(매출)은 늘었지만 정작 李秉喆(이병철) 本人(본인)은 그 돈을 모두 工場(공장) 設備(설비) 投資(투자)에 쏟았고 李秉喆(이병철) 一家(일가) 亦是(역시) 工場(공장) 귀퉁이에서 새우잠을 잤을 程度(정도)工場(공장) 狀態(상태)劣惡(열악)했다고 한다.[7] 그래도 別表(별표) 국수가 많이 팔려 賣出(매출)은 올라갔지만 大邱(대구)[8]에는 慶北(경북)에서 1()를 차지하는 소() 국수가 있었고, 2()楓菊(풍국)産業(산업)도 있었다.[9] 結局(결국) 別表(별표) 국수는 이들의 牙城(아성)挑戰(도전)을 이기지 못해 廢業(폐업)했다.

1942() 朝鮮(조선)兩朝(양조)引受(인수)事業(사업) 擴張(확장)의 발()을 마련한 () 1948() 서울 鍾路(종로)2()에서 ()()()와 함께 ()()物産(물산)公社(공사)再出(재출)()했다. 1950() 6.25 戰爭(전쟁)으로 臨時(임시) 首都(수도)였던 釜山(부산)으로 避難(피난)() ()()物産(물산)으로 使命(사명)變更(변경)했으며, 戰爭(전쟁) 以後(이후) 國家(국가)支拂保證(지불보증)()으로 세워 借款(차관)을 받아오면서 政經(정경)癒着(유착)을 통해 漸次(점차) 大企業(대기업)으로 成長(성장)하게 되었다. 1953() 제일제당을 세워 처음으로 製造業(제조업)始作(시작)國産(국산) 雪糖(설탕)開發(개발)했고, 1954() 제일모직을 세워 國産(국산) 洋服地(양복지) '골덴텍스'를 開發(개발)해냈다.

1957()韓國(한국) 財界(재계) 史上(사상) 最初(최초)新入(신입)社員(사원) 公開(공개) 採用(채용)開始(개시)() 1958() 安國(안국)火災(화재)韓國(한국)興業(흥업)銀行(은행)引受(인수)해[10] 金融業(금융업)에도 처음 進出(진출)하고 이듬해에 韓國(한국) 財閥(재벌) () 最初(최초)()書室(서실)設置(설치)企業集團(기업집단)으로의 模樣(모양)새를 갖추었다. 1963()에 동방生命(생명)(() ()()生命(생명)) 및 童話(동화)百貨店(백화점)(() 新世界(신세계)百貨店(백화점))을 세트로 引受(인수)했다. 1965() 中央日報(중앙일보)創刊(창간)言論(언론)事業(사업)에도 進出(진출)하고 新聞用紙(신문용지) 自體(자체) 需給(수급)을 위해 새()制止(제지)引受(인수)했다. 이렇게 順調(순조)롭게 擴張(확장)하며 ()()은 50~60年代(연대)財界(재계) 1()의 자리를 차지했다.

그러나 1966() 사카린 密輸(밀수) 事件(사건)으로 李秉喆(이병철)韓國(한국)肥料(비료)國家(국가)半强制(반강제)獻納(헌납)하고 經營(경영) 一線(일선)에서 暫時(잠시) 물러났으나, 1968()經營(경영) 一線(일선)에서 復歸(복귀)() 電子(전자)産業(산업) 進出(진출)宣言(선언)하여 水原(수원) 工團(공단)敷地(부지)買入(매입)했고, 이듬해 삼성전자 및 ()()-SANYO電氣(전기)를 세웠다. 以後(이후) 1970() ()()NEC를 세워 電子(전자)事業(사업) 擴張(확장)開始(개시)하며 1973() 제일합섬, 임피어리얼, 1974() ()星石(성석)油化(유화)() ()을 세우며 化學(화학)이나 觀光(관광)分野(분야) ()에도 領域(영역)擴張(확장)했고, 같은 해 韓國(한국)半導體(반도체)引受(인수)半導體(반도체)産業(산업)에 처음 손을 뻗었다.

1976() 本社(본사)를 태평로 신사옥으로 移轉(이전)하고 1977() ()()綜合(종합)建設(건설)을 세워 建設業(건설업)에도 손을 뻗고 1979()三南(삼남) 李健(이건)()副會長(부회장)이 되면서 2() 經營體(경영체)()를 위한 발()을 마련했다.

1980() 韓國(한국)電子(전자)通信(통신)引受(인수)() 1982() 프로野球團(야구단) ()()라이온즈를 創團(창단)하며 綜合(종합)硏修(연수)()을 열었고, 1983() 韓國(한국) 最初(최초)로 64K D램 開發(개발)에도 主導(주도)했다. 1985() ()()데이타시스템을 세워 電算(전산)事業(사업)에도 進出(진출)했고 1987()에 삼성종합기술원도 세웠다. 그해 11() 이병철이 死亡(사망)하자 李健(이건)()家業(가업)을 이어받아 12()부터 會長(회장)이 됐고, 1990年代(연대)부터 親族(친족)分離(분리)進行(진행)해 1991() 신세계백화점과 全州(전주)製紙(제지), 1993() 제일제당을 各各(각각) 分離(분리)시켰다.

1993() 이른바 '()經營(경영) 宣言(선언)'에 따라 로고와 企業(기업) 理念(이념) ()을 바꾸고 1995() 韓國(한국) 大企業(대기업)으로는 最初(최초)()그룹 制度(제도)導入(도입)했으며, 同年(동년)에 삼성자동차를 세워 自動車(자동차) 産業(산업)에도 進出(진출)했다. 그러나 1997() 外換(외환)危機(위기)로 인해 構造(구조)調整(조정)을 거듭 斷行(단행)해 2000()에 삼성자동차를 프랑스의 르노-닛산 얼라이언스에 賣却(매각)했다.

2000年代(연대) 半導體(반도체)와 TV, 2010年代(연대) 스마트폰 市場(시장) ()에서 急成長(급성장)을 거듭하며 國內(국내) 大企業(대기업) 水準(수준)에서 글로벌 大企業(대기업)으로 變身(변신)하는 것에 成功(성공)한다. 2001()에는 王子(왕자)()으로 空中分解(공중분해)된 현대그룹을 제치고 다시 財界(재계) 序列(서열) 1()로 다시 올라섰고, 2020年代(연대)까지 1()地位(지위)維持(유지)하고 있다.

2008()에는 西草(서초) ()()타운으로 本社(본사)移轉(이전)했다.

2014() 5() 李健(이건)()急性(급성) 心筋(심근)梗塞(경색)으로 쓰러진 () 아들 이재용이 事實上(사실상) 總帥(총수) 役割(역할)을 맡아 ()年度(연도)에 삼성종합화학 () 4() 石油化學(석유화학) 系列社(계열사)를 한화그룹에 賣却(매각)했고, 2015()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合倂(합병)() '統合(통합) ()()物産(물산)'을 出帆(출범)시켰다. 2016() ()()精密化(정밀화)()()()SDI 케미컬事業部(사업부)()을 롯데그룹에 팔고 2017() 2() 未來(미래)戰略(전략)() 解體(해체)宣言(선언)하였다. 이에 따라 系列社(계열사)() 獨立(독립)/自律(자율)經營體(경영체)() 轉換(전환) 手順(수순)을 밟게 되었으며, 그에 따라 本社(본사)()()타운에서 ()()디지털시티로 移轉(이전)했으며, ()()그룹 公式(공식) 홈페이지도 ()을 닫았다. 技士(기사) 라고 公式的(공식적)으로만 말했을뿐 事實上(사실상) 未來(미래)戰略(전략)()이라는 名牌(명패)만 땐거지 現在(현재) 삼성그룹의 中樞(중추)인 삼성전자에서 系列社(계열사) 經營管理(경영관리)持續的(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2017() () ()槿()()-최순실 게이트의 餘波(여파)로, 삼성그룹은 그룹의 經營(경영)總括(총괄)하던 未來(미래)戰略(전략)()解體(해체) 計劃(계획)發表(발표)했다. 未來(미래)戰略(전략)()()()系列社(계열사)(關係史(관계사))들을 垂直的(수직적) 支配(지배)하는 組織(조직)으로서, 未來(미래)戰略(전략)()解體(해체)는 삼성그룹의 解體(해체)를 의미한다. 한便() 삼성그룹은 未來(미래)戰略(전략)() 解體(해체) ()系列社(계열사)들이 各自(각자) 自律的(자율적)으로 經營(경영)하는 體制(체제)轉換(전환)하게 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그룹 公採(공채)도 2017()을 끝으로 없어지고, 系列社(계열사)()獨自的(독자적)으로 採用(채용)하는 體制(체제)로 바뀐다고 하였다. 結局(결국) 2017() 4() 3()에는 ()()그룹 公式(공식) 홈페이지와 블로그가 ()을 닫았다. 이보다 앞선 2017() 3() 2()에는 그룹 사내 放送(방송)終了(종료)되었고, 3() 3()에는 그룹 記者室(기자실)閉鎖(폐쇄)됐다.

다만, ()() 關係(관계)()()持分(지분)關係(관계)如前(여전)하기 때문에 그룹이 解體(해체)된 것은 아니다. ()()如前(여전)公正去來委員會(공정거래위원회)에서 發表(발표)하는 企業集團(기업집단)이며, 그룹 總裁(총재) 李在(이재)()實質(실질) 支配力(지배력)行使(행사)한다.

브랜드 아이덴티티[編輯]

名稱(명칭)[編輯]

()()은 세()의 별을 뜻한다. ()()닷컴의 說明(설명)에 따르면 李秉喆(이병철) 創業主(창업주)의 비전인 ‘하늘의 별처럼 크고 强力(강력)하고 永遠(영원)하라’는 意味(의미)를 담고 있다. '()()이라는 이름에는 끝없는 擴張(확장)志向(지향)한다. ()은 크고 많은 것, ()한 것이라는 뜻을 지녔기 때문에 우리 民族(민족)이 가장 좋아하는 數字(숫자)며, ()은 밝고 높고 永遠(영원)히 깨이 빛난다는 意味(의미)'로 ()()이라고 지었다고 한다.[1] 2019()부터 ()()使命(사명)意味(의미)를 함께하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힘을 象徵(상징)하는 數字(숫자) 3에 꺼지지 않는 意志(의지)象徵(상징)하는 별이라고 쉽게 풀어 說明(설명)한다. 여기에 애니메이션 形式(형식)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글로 읽는 것보다 재미있게 理解(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로마()로는 'SAMSUNG'이라서 네티즌들이 '샘숭', '삼숭'이라고 놀리기도 하지만 實際(실제) 美國(미국)()들의 發音(발음)은 쌤썽에 가깝다. 本來(본래) '()()'의 正式(정식) 로마()表記(표기)는 'SAMSEONG'이다. 西洋(서양)() 外國人(외국인)들 사이에서 別名(별명)은 'Sammy'이다. same soon이라고 ()() 애플 訴訟(소송)() 關聯(관련)하여 ()()을 비꼬는 別名(별명)도 있다.

露西亞(노서아)에선 삼숭크(Самсунг)[2]라고 ()한다.

日本語(일본어) 公式(공식) 表記(표기)發音(발음)삼무슨(サムスン)[3]이다. 過去(과거) ㅓ를 オ()으로 表記(표기)하는 慣例(관례)에 따라 サムソン이라 表記(표기)하기도 했는데 이러면 聖書(성서) 人物(인물) 삼손의 發音(발음)과 같아지는지라 ()() 立場(입장)에선 이러한 이름으로 쓰이는게 企業(기업) 認知度(인지도)()()()檢索(검색)容易(용이)()을 떨어뜨린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또한 基督敎(기독교)非主流(비주류)日本(일본)에서는 事實(사실) 삼손 하면 聖書(성서)人物(인물)보다도 同名(동명)의 게이 雜誌(잡지)가 훨씬 認知度(인지도)가 높기에, 成人(성인)()과 관계되는 것도 企業(기업) 立場(입장)에서 좋은 일이 아니다.

漢字(한자)()()(()())이라 表記(표기)하는 境遇(경우)도 없지는 않으나, 이는 日本語(일본어)로 '미쓰보시'라고 읽히기 때문에 미쓰이 그룹이나 미쓰비시 그룹과 混同(혼동)되거나 다른 日本(일본) 企業(기업)으로 誤認(오인)될 수 있어 거의 쓰이지 않는다.

이와 關聯(관련)해서 '미쓰비시'와 비슷한 '미쓰보시'로 보이려고 '()()'이라고 지은 것이라는 ()() 루머가 있다. 다만 發音(발음)이 비슷하다는 것 ()에는 根據(근거)()로 없고, 只今(지금)이라면 모를까 ()()이 처음 생기던 때에 ()()商會(상회)地方(지방)에서 작게 낸 農産物(농산물) 販賣店(판매점)이었으므로 미쓰비시와 競爭(경쟁) 關係(관계)도 아니고 取扱(취급) 品目(품목)相關(상관)이 없었다. 애()에 '()()' 自體(자체)韓國(한국)에서 地名(지명)으로 흔하게 쓰이는 말로, 創立(창립) 地域(지역)大邱(대구) 바로 옆 ()네인 慶山(경산)()()()이 있다. 이병철이 直接(직접) 自敍傳(자서전)에 밝힌 이름의 由來(유래)도 미쓰비시와는 無關(무관)하다.

中國語(중국어)로는 漢字(한자) ()()中國語(중국어) 讀音(독음)으로 읽어 '싼싱(Sānxīng)'이라고 發音(발음)한다. 中國(중국)進出(진출)하는 漢字(한자)文化圈(문화권) 國家(국가)使命(사명)이 마찬가지로 漢字(한자)로 이루어져 있을 境遇(경우) 大部分(대부분) 이런 慣例(관례)를 따른다.

  1. 李秉喆(이병철)自敍傳(자서전) 湖巖(호암)自轉(자전) 34쪽에 홈페이지와 같은 內容(내용)이 적혀 있다. 아마도 湖巖(호암)字典(자전)內容(내용)을 그대로 홈페이지에 올린 듯 싶다.
  2. 元來(원래) г 發音(발음)은 ㄱ과 類似(유사)하지만(正確(정확)히는 /g/임) 露西亞語(노서아어) 發音(발음) 原則(원칙)依據(의거)하면 有聲音(유성음)單語(단어) 맨 뒤에 들어가면 無聲音(무성음)으로 發音(발음)하기 때문이다.
  3. 가타카나 綴字(철자)何必(하필) 메트로이드 시리즈의 主人公(주인공)()무스 아란(Samus Aran, サムス·アラン)의 이름(サムス)과 마지막 한 글()를 빼고 똑같은지라 日本(일본) 웹사이트를 飜譯機(번역기)韓國語(한국어) 飜譯(번역)하면 種種(종종) 뜬끔없이 '()()'이 튀어나오는 일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