在日本朝鮮人總聯合會(日本語: 在日本朝鮮人総聯合会) 또는 朝鮮總聯合은 日本에 位置한 在日朝鮮族組織이다. 北韓 公式言論은 '旅日朝鮮人總聯盟'이라고도 불린다.
1955年 5月 25日에 設立되었다. "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國은 日本과 公式的인 外交關係가 없기 때문에.
紹介[編輯]
第2次世界大戰이 끝난 後 韓日은 修交를 맺었고, 以前에 日本에서 '朝鮮'으로 國籍을 登錄한 在日朝鮮族은 日本이나 大韓民國國籍을 選擇할 수 있는 反面, 北韓에 忠實한 朝鮮人은 以前에 登錄한 國籍을 維持했다. (그들이 日本에 登錄한 國籍인 朝鮮은 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國國籍과 同一하지 않다는 點에 留意해야 한다.)
日本에서 또 다른 在日 朝鮮族의 組織은 在日本大韓民國民團인데 日本에 居住하지만 歸化하지 않은 北韓人 總61萬 名 中 65%는 民團에 加入했고 25%는 總聯에 加入했다.
總聯의 本社는 東京의 千代田區에 있으며 日本 各地에 支部가 있습니다.
總聯은 日本에서 열여덟 個의 言論과 스물 세 個의 企業을 包含한 많은 機關을 支援하고 있다.
歷代指導者[編輯]
朝鮮總聯은 初代 委員長인 韓德洙트가 1955年 設立當初부터 2001年 2月까지 死亡했다고 紹介했다. 徐萬述은 2001年 5月 2代 會長으로 選出된 後 2012年 2月 死亡할 때까지 在職했다. 2012年 5月 20日 在日朝鮮人總聯合會는 東京都 千代田區 朝鮮中央會館에서 만나 2月에 死亡한 徐萬述의 뒤를 이어 責任副會長 許宗萬(77歲)을 選出하여 3代 會長으로 選出되었다.
歷史[編輯]
1897年 朝鮮王國은 中國의 冊封體制에서 벗어났고 國號도 大韓帝國으로 改稱되었고 王은 皇帝로 改稱되었다. 이때 大韓帝國에서 近代의 '國民登錄制度'인 戶籍調査規則(1896年)과 '民籍法'(1909年) 생겨났는데, 戶籍制度를 實現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大韓帝國은 1910年에 日本에 合倂되었다. 韓半島는 日本의 領土가 되었고 韓半島의 百姓들은 日本의 國民이 되었다.
1945年 8月 15日 日本이 降伏한 後 大韓帝國은 復活하지 못했고 以後 半島는 南北으로 分斷되었다. "이때 韓半島에 사는 朝鮮人은 ""日本 國籍""에서 解放되었고, 日本에 남아 있던 在日 朝鮮族은 如前히 相當한 期間 동안 聯合軍 司令部와 日本 政府에 依해 ""日本 國籍을 維持""로 指定되었다."
1948年 韓國과 北韓이 잇달아 樹立되어 各各 韓半島 全體의 領土 主權과 民族 全體의 主權을 主張하였다. 그래서 韓國은 在日 朝鮮族을 韓國 國民으로 보고 北韓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國民으로 보고 있다. 同時에 日本 政府는 法的으로 그들을 日本 國民으로 規定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在日 北韓人 國籍 問題의 特徵이다.
南과 北이 各各 새로운 나라를 樹立한 後 韓國은 1948年 12月에 國籍法을 制定하였다. 이 國籍法에 따르면 在日 朝鮮族은 모두 韓國 國籍입니다(본인의 意志에 따라 日本 國籍을 取得한 者는 除外하면 自動으로 韓國 國籍을 喪失합니다). 그러나 한便으로는 北韓도 1963年에 國籍法을 制定했다. 이 法은 民族 血統의 原則에 따라 日本에 있는 모든 朝鮮民族의 構成員을 朝鮮 國籍으로 定한다.
日本 政府에 依해 '北韓' 國籍으로 登錄된 後 韓國 政府에서 發給한 國籍 證明書類(韓國 旅券 또는 在外國民登錄證)를 所持한 境遇, 日本 政府는 韓國 國籍을 確認하고 日本 登錄 書類 '國籍欄'에 '韓國'으로 다시 記入합니다.
"그러나 當時에는 韓國 國民으로 定한 사람도 있었는데 後에 이 部分의 사람들은 大部分 節次를 밟았고, 日本 政府는 이에 따라 '韓國'으로 바꿨어요.
問題는 自身이 北韓 國籍者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日本 政府는 北韓 政權을 認定하지 않고 이것은 實際로 日本에 韓國과 北韓이라는 두 가지 國籍이 存在한다는 것을 意味한다. 政治的으로 前者는 韓半島의 南方 政權을 支持하고 後者는 北方 政權을 支持한다.
"駐日聯合軍最高司令部와 日本 當局은 日本人 "또한 日本 朝鮮族도 日本 國民의 敎育 惠澤을 받지 못하고
日本 社會는 恒常 在日 朝鮮人을 輕蔑해 왔다. "이런 狀況에서 日本 社會는 劣惡한 背汗의 물결이 일어났고 前後 오랜 期間 동안 就業 問題에 있어서 日本人들도 그들의 生存 空間을 壓迫했다. "게다가 戰爭 後 日本 經濟는 困境에 빠졌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가장 힘든 아르바이트를 하며 廢品 回收, 돼지 飼育, 私的 釀造 等의 活路를 찾다가 食堂, 派稱코 賭博 가게, 甚至於 紅燈街 業界에 뛰어들었다.
日本에 居住하는 北韓 國籍者는 主로 다음과 같은 部分을 包含한다.
(1) 日本이 朝鮮을 다스리던 時節의 移民(1910年~1945年)
(2) 第二次 世界大戰 中의 勞動
(3) 第二次世界大戰 以後의 難民, 濟州事件으로 인한 難民 包含
1953年 公式調査에 따르면 이들 中 93%가 南韓 卽現在의 韓國出身이다.
"1945年 以前에는 日本이 實際로 韓半島를 支配했기 때문에 當時 朝鮮人은 모두 日本國籍이었지만, 第二次世界大戰이 끝난 後
1948年 南北韓이 各各 獨立하여 建國하였다. "日本이 韓國과 修交를 맺고 韓國이 唯一하게 朝鮮民族을 代表하는 正當한 政府임을 認定한 後
1952年 北韓指導者金日成은 社會主義를 믿는 在日韓人들에게 北韓과 日本을 連結하고 南北의 統一을 追求하는 組織을 만들 것을 促求했다. 그 後 朝鮮總聯은 1955年 5月 25日에 設立이 宣布되었다.
1950年代에 總聯은 在韓人들에게 '社會主義의 地上樂園'인 北韓으로 돌아가 살 것을 促求했다. 이 움직임은 在日本大韓民國民團이 强力히 反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