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星그룹"의 두 版 사이의 差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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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年 朝鮮兩朝를 引受해 事業 擴張의 발板을 마련한 後 1948年 서울 鍾路2街에서 趙洪濟와 함께 三星物産公社로 再出帆했다. 1950年 6.25 戰爭으로 臨時 首都였던 釜山으로 避難간 後 三星物産으로 使命을 變更했으며, 戰爭 以後 國家를 支拂保證人으로 세워 借款을 받아오면서 政經癒着을 통해 漸次 大企業으로 成長하게 되었다. 1953年 제일제당을 세워 처음으로 製造業을 始作해 國産 雪糖을 開發했고, 1954年 제일모직을 세워 國産 洋服地 '골덴텍스'를 開發해냈다.
1942年 朝鮮兩朝를 引受해 事業 擴張의 발板을 마련한 後 1948年 서울 鍾路2街에서 趙洪濟와 함께 三星物産公社로 再出帆했다. 1950年 6.25 戰爭으로 臨時 首都였던 釜山으로 避難간 後 三星物産으로 使命을 變更했으며, 戰爭 以後 國家를 支拂保證人으로 세워 借款을 받아오면서 政經癒着을 통해 漸次 大企業으로 成長하게 되었다. 1953年 제일제당을 세워 처음으로 製造業을 始作해 國産 雪糖을 開發했고, 1954年 제일모직을 세워 國産 洋服地 '골덴텍스'를 開發해냈다.


1957年에 韓國 財界 史上 最初로 新入社員 公開 採用을 開始한 後 1958年 安國火災와 韓國興業銀行을 引受해[10] 金融業에도 처음 進出하고 이듬해에 韓國 財閥 中 最初로 祕書室을 設置해 企業集團으로의 模樣새를 갖추었다. 1963年에 동방生命(現 三星生命) 및 童話百貨店(現 新世界百貨店)을 세트로 引受했다. 1965年 中央日報를 創刊해 言論事業에도 進出하고 新聞用紙 自體 需給을 위해 새韓制止도 引受했다. 이렇게 順調롭게 擴張하며 三星은 50~60年代에 財界 1位의 자리를 차지했다.
1957年에 韓國 財界 史上 最初로 新入社員 公開 採用을 開始한 後 1958年 安國火災와 韓國興業銀行을 引受해[10] 金融業에도 처음 進出하고 이듬해에 韓國 財閥 中 最初로 祕書室을 設置해 企業集團으로의 模樣새를 갖추었다. 1963年에 동방生命(現 三星生命) 및 童話百貨店(現 新世界百貨店)을 세트로 引受했다. 1965年 [[ 中央日報]] 를 創刊해 言論事業에도 進出하고 新聞用紙 自體 需給을 위해 새韓制止도 引受했다. 이렇게 順調롭게 擴張하며 三星은 50~60年代에 財界 1位의 자리를 차지했다.


 그러나 1966年 사카린 密輸 事件으로 李秉喆은 韓國肥料를 國家에 半强制로 獻納하고 經營 一線에서 暫時 물러났으나, 1968年쯤 經營 一線에서 復歸한 後 電子産業 進出을 宣言하여 水原 工團敷地를 買入했고, 이듬해 삼성전자 및 三星-SANYO電氣를 세웠다. 以後 1970年 三星NEC를 세워 電子事業 擴張을 開始하며 1973年 제일합섬, 임피어리얼, 1974年 三星石油化學 等을 세우며 化學이나 觀光分野 等에도 領域을 擴張했고, 같은 해 韓國半導體를 引受해 半導體産業에 처음 손을 뻗었다.
 그러나 1966年 사카린 密輸 事件으로 李秉喆은 韓國肥料를 國家에 半强制로 獻納하고 經營 一線에서 暫時 물러났으나, 1968年쯤 經營 一線에서 復歸한 後 電子産業 進出을 宣言하여 水原 工團敷地를 買入했고, 이듬해 삼성전자 및 三星-SANYO電氣를 세웠다. 以後 1970年 三星NEC를 세워 電子事業 擴張을 開始하며 1973年 제일합섬, 임피어리얼, 1974年 三星石油化學 等을 세우며 化學이나 觀光分野 等에도 領域을 擴張했고, 같은 해 韓國半導體를 引受해 半導體産業에 처음 손을 뻗었다.

2024年5月16日(木)21時54分 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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成立(성립)() 1938()8()1()
類型(유형) 複合(복합) 企業(기업), 企業(기업) 集團(집단)
初代(초대) 總裁(총재) 李秉喆(이병철)
() 總裁(총재) 李在(이재)()
賣出額(매출액) 418() 7,681() 원(2023() 基準(기준))
營業利益(영업이익) 37() 7,989() 원(2023() 基準(기준))
市價(시가) 總額(총액) 632() 9,323() 원(2023() 10() 基準(기준))
公正(공정)資産(자산)總額(총액) 486() 4,007() 원(2023() 基準(기준))
職員(직원) () 274,163()(2023() 基準(기준))

槪要(개요)

大韓民國(대한민국)大企業(대기업)이자 國內(국내) 最大(최대) 規模(규모)多國籍(다국적) 企業(기업)이다. 資本(자본)總額(총액) 基準(기준) 財界(재계) 序列(서열) 1()로 그 () 時價總額(시가총액), 賣出(매출) () 企業(기업) 評價(평가) 要素(요소)의 거의 모든 領域(영역)에서 2(), 3() 그룹과 壓倒的(압도적) 隔差(격차)를 보이고 있다.

歷史(역사)

日帝(일제)强占期(강점기) 時節(시절)인 1938() 3(), 協同(협동)精米所(정미소) 主人(주인)이었던 李秉喆(이병철)이 대구부 手動(수동)(() 大邱廣域市(대구광역시) 中區(중구) 인교())에 '()()商會(상회)'를 開業(개업)한 게 본 그룹의 始初(시초)이다. 當時(당시) 29()李秉喆(이병철)慶尙南道(경상남도) 金海(김해)에서 農地(농지) 投機(투기)失敗(실패)() 心機一轉(심기일전)을 굳히며 資本金(자본금) 3() 원으로 ()()商會(상회)를 세우게 되었다.

처음에는 農産物(농산물) 販賣(판매)와 '別表(별표)국수' 販賣(판매) () 가볍고 基本的(기본적)인 것을 販賣(판매)했다. 後날(훗날)()()그룹 形態(형태)比較(비교)하면 差異(차이)懸隔(현격)히 나는 便()이다. 甚至於(심지어) 雪糖(설탕)肥料(비료) 팔던 時節(시절) ()의 얘기다. CJ그룹 () 名譽(명예)會長(회장)이자 李秉喆(이병철)長男(장남) 이맹희가 回顧(회고)한 바에 따르면, 當時(당시) ()()商會(상회)只今(지금)()()과는 ()혀 다른 모습이었으며, 국수 工場(공장)賣出(매출)은 늘었지만 정작 李秉喆(이병철) 本人(본인)은 그 돈을 모두 工場(공장) 設備(설비) 投資(투자)에 쏟았고 李秉喆(이병철) 一家(일가) 亦是(역시) 工場(공장) 귀퉁이에서 새우잠을 잤을 程度(정도)工場(공장) 狀態(상태)劣惡(열악)했다고 한다.[7] 그래도 別表(별표) 국수가 많이 팔려 賣出(매출)은 올라갔지만 大邱(대구)[8]에는 慶北(경북)에서 1()를 차지하는 소() 국수가 있었고, 2()楓菊(풍국)産業(산업)도 있었다.[9] 結局(결국) 別表(별표) 국수는 이들의 牙城(아성)挑戰(도전)을 이기지 못해 廢業(폐업)했다.

1942() 朝鮮(조선)兩朝(양조)引受(인수)事業(사업) 擴張(확장)의 발()을 마련한 () 1948() 서울 鍾路(종로)2()에서 ()()()와 함께 ()()物産(물산)公社(공사)再出(재출)()했다. 1950() 6.25 戰爭(전쟁)으로 臨時(임시) 首都(수도)였던 釜山(부산)으로 避難(피난)() ()()物産(물산)으로 使命(사명)變更(변경)했으며, 戰爭(전쟁) 以後(이후) 國家(국가)支拂保證(지불보증)()으로 세워 借款(차관)을 받아오면서 政經(정경)癒着(유착)을 통해 漸次(점차) 大企業(대기업)으로 成長(성장)하게 되었다. 1953() 제일제당을 세워 처음으로 製造業(제조업)始作(시작)國産(국산) 雪糖(설탕)開發(개발)했고, 1954() 제일모직을 세워 國産(국산) 洋服地(양복지) '골덴텍스'를 開發(개발)해냈다.

1957()韓國(한국) 財界(재계) 史上(사상) 最初(최초)新入(신입)社員(사원) 公開(공개) 採用(채용)開始(개시)() 1958() 安國(안국)火災(화재)韓國(한국)興業(흥업)銀行(은행)引受(인수)해[10] 金融業(금융업)에도 처음 進出(진출)하고 이듬해에 韓國(한국) 財閥(재벌) () 最初(최초)()書室(서실)設置(설치)企業集團(기업집단)으로의 模樣(모양)새를 갖추었다. 1963()에 동방生命(생명)(() ()()生命(생명)) 및 童話(동화)百貨店(백화점)(() 新世界(신세계)百貨店(백화점))을 세트로 引受(인수)했다. 1965() 中央日報(중앙일보)創刊(창간)言論(언론)事業(사업)에도 進出(진출)하고 新聞用紙(신문용지) 自體(자체) 需給(수급)을 위해 새()制止(제지)引受(인수)했다. 이렇게 順調(순조)롭게 擴張(확장)하며 ()()은 50~60年代(연대)財界(재계) 1()의 자리를 차지했다.

그러나 1966() 사카린 密輸(밀수) 事件(사건)으로 李秉喆(이병철)韓國(한국)肥料(비료)國家(국가)半强制(반강제)獻納(헌납)하고 經營(경영) 一線(일선)에서 暫時(잠시) 물러났으나, 1968()經營(경영) 一線(일선)에서 復歸(복귀)() 電子(전자)産業(산업) 進出(진출)宣言(선언)하여 水原(수원) 工團(공단)敷地(부지)買入(매입)했고, 이듬해 삼성전자 및 ()()-SANYO電氣(전기)를 세웠다. 以後(이후) 1970() ()()NEC를 세워 電子(전자)事業(사업) 擴張(확장)開始(개시)하며 1973() 제일합섬, 임피어리얼, 1974() ()星石(성석)油化(유화)() ()을 세우며 化學(화학)이나 觀光(관광)分野(분야) ()에도 領域(영역)擴張(확장)했고, 같은 해 韓國(한국)半導體(반도체)引受(인수)半導體(반도체)産業(산업)에 처음 손을 뻗었다.

1976() 本社(본사)를 태평로 신사옥으로 移轉(이전)하고 1977() ()()綜合(종합)建設(건설)을 세워 建設業(건설업)에도 손을 뻗고 1979()三南(삼남) 李健(이건)()副會長(부회장)이 되면서 2() 經營體(경영체)()를 위한 발()을 마련했다.

1980() 韓國(한국)電子(전자)通信(통신)引受(인수)() 1982() 프로野球團(야구단) ()()라이온즈를 創團(창단)하며 綜合(종합)硏修(연수)()을 열었고, 1983() 韓國(한국) 最初(최초)로 64K D램 開發(개발)에도 主導(주도)했다. 1985() ()()데이타시스템을 세워 電算(전산)事業(사업)에도 進出(진출)했고 1987()에 삼성종합기술원도 세웠다. 그해 11() 이병철이 死亡(사망)하자 李健(이건)()家業(가업)을 이어받아 12()부터 會長(회장)이 됐고, 1990年代(연대)부터 親族(친족)分離(분리)進行(진행)해 1991() 신세계백화점과 全州(전주)製紙(제지), 1993() 제일제당을 各各(각각) 分離(분리)시켰다.

1993() 이른바 '()經營(경영) 宣言(선언)'에 따라 로고와 企業(기업) 理念(이념) ()을 바꾸고 1995() 韓國(한국) 大企業(대기업)으로는 最初(최초)()그룹 制度(제도)導入(도입)했으며, 同年(동년)에 삼성자동차를 세워 自動車(자동차) 産業(산업)에도 進出(진출)했다. 그러나 1997() 外換(외환)危機(위기)로 인해 構造(구조)調整(조정)을 거듭 斷行(단행)해 2000()에 삼성자동차를 프랑스의 르노-닛산 얼라이언스에 賣却(매각)했다.

2000年代(연대) 半導體(반도체)와 TV, 2010年代(연대) 스마트폰 市場(시장) ()에서 急成長(급성장)을 거듭하며 國內(국내) 大企業(대기업) 水準(수준)에서 글로벌 大企業(대기업)으로 變身(변신)하는 것에 成功(성공)한다. 2001()에는 王子(왕자)()으로 空中分解(공중분해)된 현대그룹을 제치고 다시 財界(재계) 序列(서열) 1()로 다시 올라섰고, 2020年代(연대)까지 1()地位(지위)維持(유지)하고 있다.

2008()에는 西草(서초) ()()타운으로 本社(본사)移轉(이전)했다.

2014() 5() 李健(이건)()急性(급성) 心筋(심근)梗塞(경색)으로 쓰러진 () 아들 이재용이 事實上(사실상) 總帥(총수) 役割(역할)을 맡아 ()年度(연도)에 삼성종합화학 () 4() 石油化學(석유화학) 系列社(계열사)를 한화그룹에 賣却(매각)했고, 2015()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合倂(합병)() '統合(통합) ()()物産(물산)'을 出帆(출범)시켰다. 2016() ()()精密化(정밀화)()()()SDI 케미컬事業部(사업부)()을 롯데그룹에 팔고 2017() 2() 未來(미래)戰略(전략)() 解體(해체)宣言(선언)하였다. 이에 따라 系列社(계열사)() 獨立(독립)/自律(자율)經營體(경영체)() 轉換(전환) 手順(수순)을 밟게 되었으며, 그에 따라 本社(본사)()()타운에서 ()()디지털시티로 移轉(이전)했으며, ()()그룹 公式(공식) 홈페이지도 ()을 닫았다. 技士(기사) 라고 公式的(공식적)으로만 말했을뿐 事實上(사실상) 未來(미래)戰略(전략)()이라는 名牌(명패)만 땐거지 現在(현재) 삼성그룹의 中樞(중추)인 삼성전자에서 系列社(계열사) 經營管理(경영관리)持續的(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2017() () ()槿()()-최순실 게이트의 餘波(여파)로, 삼성그룹은 그룹의 經營(경영)總括(총괄)하던 未來(미래)戰略(전략)()解體(해체) 計劃(계획)發表(발표)했다. 未來(미래)戰略(전략)()()()系列社(계열사)(關係史(관계사))들을 垂直的(수직적) 支配(지배)하는 組織(조직)으로서, 未來(미래)戰略(전략)()解體(해체)는 삼성그룹의 解體(해체)를 의미한다. 한便() 삼성그룹은 未來(미래)戰略(전략)() 解體(해체) ()系列社(계열사)들이 各自(각자) 自律的(자율적)으로 經營(경영)하는 體制(체제)轉換(전환)하게 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그룹 公採(공채)도 2017()을 끝으로 없어지고, 系列社(계열사)()獨自的(독자적)으로 採用(채용)하는 體制(체제)로 바뀐다고 하였다. 結局(결국) 2017() 4() 3()에는 ()()그룹 公式(공식) 홈페이지와 블로그가 ()을 닫았다. 이보다 앞선 2017() 3() 2()에는 그룹 사내 放送(방송)終了(종료)되었고, 3() 3()에는 그룹 記者室(기자실)閉鎖(폐쇄)됐다.

다만, ()() 關係(관계)()()持分(지분)關係(관계)如前(여전)하기 때문에 그룹이 解體(해체)된 것은 아니다. ()()如前(여전)公正去來委員會(공정거래위원회)에서 發表(발표)하는 企業集團(기업집단)이며, 그룹 總裁(총재) 李在(이재)()實質(실질) 支配力(지배력)行使(행사)한다.

브랜드 아이덴티티

名稱(명칭)

()()은 세()의 별을 뜻한다. ()()닷컴의 說明(설명)에 따르면 李秉喆(이병철) 創業主(창업주)의 비전인 ‘하늘의 별처럼 크고 强力(강력)하고 永遠(영원)하라’는 意味(의미)를 담고 있다. '()()이라는 이름에는 끝없는 擴張(확장)志向(지향)한다. ()은 크고 많은 것, ()한 것이라는 뜻을 지녔기 때문에 우리 民族(민족)이 가장 좋아하는 數字(숫자)며, ()은 밝고 높고 永遠(영원)히 깨이 빛난다는 意味(의미)'로 ()()이라고 지었다고 한다.[1] 2019()부터 ()()使命(사명)意味(의미)를 함께하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힘을 象徵(상징)하는 數字(숫자) 3에 꺼지지 않는 意志(의지)象徵(상징)하는 별이라고 쉽게 풀어 說明(설명)한다. 여기에 애니메이션 形式(형식)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글로 읽는 것보다 재미있게 理解(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로마()로는 'SAMSUNG'이라서 네티즌들이 '샘숭', '삼숭'이라고 놀리기도 하지만 實際(실제) 美國(미국)()들의 發音(발음)은 쌤썽에 가깝다. 本來(본래) '()()'의 正式(정식) 로마()表記(표기)는 'SAMSEONG'이다. 西洋(서양)() 外國人(외국인)들 사이에서 別名(별명)은 'Sammy'이다. same soon이라고 ()() 애플 訴訟(소송)() 關聯(관련)하여 ()()을 비꼬는 別名(별명)도 있다.

露西亞(노서아)에선 삼숭크(Самсунг)[2]라고 ()한다.

日本語(일본어) 公式(공식) 表記(표기)發音(발음)삼무슨(サムスン)[3]이다. 過去(과거) ㅓ를 オ()으로 表記(표기)하는 慣例(관례)에 따라 サムソン이라 表記(표기)하기도 했는데 이러면 聖書(성서) 人物(인물) 삼손의 發音(발음)과 같아지는지라 ()() 立場(입장)에선 이러한 이름으로 쓰이는게 企業(기업) 認知度(인지도)()()()檢索(검색)容易(용이)()을 떨어뜨린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또한 基督敎(기독교)非主流(비주류)日本(일본)에서는 事實(사실) 삼손 하면 聖書(성서)人物(인물)보다도 同名(동명)의 게이 雜誌(잡지)가 훨씬 認知度(인지도)가 높기에, 成人(성인)()과 관계되는 것도 企業(기업) 立場(입장)에서 좋은 일이 아니다.

漢字(한자)()()(()())이라 表記(표기)하는 境遇(경우)도 없지는 않으나, 이는 日本語(일본어)로 '미쓰보시'라고 읽히기 때문에 미쓰이 그룹이나 미쓰비시 그룹과 混同(혼동)되거나 다른 日本(일본) 企業(기업)으로 誤認(오인)될 수 있어 거의 쓰이지 않는다.

이와 關聯(관련)해서 '미쓰비시'와 비슷한 '미쓰보시'로 보이려고 '()()'이라고 지은 것이라는 ()() 루머가 있다. 다만 發音(발음)이 비슷하다는 것 ()에는 根據(근거)()로 없고, 只今(지금)이라면 모를까 ()()이 처음 생기던 때에 ()()商會(상회)地方(지방)에서 작게 낸 農産物(농산물) 販賣店(판매점)이었으므로 미쓰비시와 競爭(경쟁) 關係(관계)도 아니고 取扱(취급) 品目(품목)相關(상관)이 없었다. 애()에 '()()' 自體(자체)韓國(한국)에서 地名(지명)으로 흔하게 쓰이는 말로, 創立(창립) 地域(지역)大邱(대구) 바로 옆 ()네인 慶山(경산)()()()이 있다. 이병철이 直接(직접) 自敍傳(자서전)에 밝힌 이름의 由來(유래)도 미쓰비시와는 無關(무관)하다.

中國語(중국어)로는 漢字(한자) ()()中國語(중국어) 讀音(독음)으로 읽어 '싼싱(Sānxīng)'이라고 發音(발음)한다. 中國(중국)進出(진출)하는 漢字(한자) 文化圈(문화권) 國家(국가)使命(사명)이 마찬가지로 漢字(한자)로 이루어져 있을 境遇(경우) 大部分(대부분) 이런 慣例(관례)를 따른다.

  1. 李秉喆(이병철)自敍傳(자서전) 湖巖(호암)自轉(자전) 34쪽에 홈페이지와 같은 內容(내용)이 적혀 있다. 아마도 湖巖(호암)字典(자전)內容(내용)을 그대로 홈페이지에 올린 듯 싶다.
  2. 元來(원래) г 發音(발음)은 ㄱ과 類似(유사)하지만(정확히는 /g/임) 러시아() 發音(발음) 原則(원칙)依據(의거)하면 有聲音(유성음)單語(단어) 맨 뒤에 들어가면 無聲音(무성음)으로 發音(발음)하기 때문이다.
  3. 가타카나 綴字(철자)何必(하필) 메트로이드 시리즈의 主人公(주인공)()무스 아란(Samus Aran, サムス·アラン)의 이름(サムス)과 마지막 한 글()를 빼고 똑같은지라 日本(일본) 웹사이트를 飜譯機(번역기)韓國語(한국어) 飜譯(번역)하면 種種(종종) 뜬끔없이 '()()'() 튀어나오는 일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