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韓民國(대한민국)歷史的(역사적)으로 韓半島(한반도) ()에서 使用(사용)하는 行政區域(행정구역) 單位(단위)이다.

歷史(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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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半島(한반도) ()에서 郡縣制(군현제)가 본격적으로 시행된 것은 中央集權(중앙집권)() 國家(국가)體制(체제)가 갖추어진 高句麗(고구려), 百濟(백제), 新羅(신라)三國時代(삼국시대)부터로, 이는 衛滿朝鮮(위만조선)滅亡(멸망)시킨 ()武帝(무제)가 설치한 ()()漢四郡(한사군)과는 規模(규모)機能(기능)면에서 差異(차이)가 있었다. 三國(삼국)領土(영토)가 넓어지고 中央政府(중앙정부)勸力(권력)地方(지방)으로 뻗치면서 三國(삼국)中國(중국)郡縣制(군현제)導入(도입)運營(운영)하기 始作(시작)했는데, 各國(각국)征服(정복)하여 勢力圈(세력권)編入(편입)시킨 部族(부족)들의 땅에 ()을 쌓고 行政(행정)中心(중심)으로 삼기 시작했고 그것이 나중에 ()이 되었다. ()이 중심이었기 때문에 當時(당시)에는 ()首長(수장)을 대개 城主(성주)라고 불렀고, () 나라별로 處閭近支(처려근지) 또는 道使(도사)太守(태수)라고도 불렀다.

新羅(신라)三國(삼국)統一(통일)(676())하고 80餘年(여년) 뒤인 757()(新羅(신라) 景德王(경덕왕) 16()) 全國的(전국적)으로 行政區域(행정구역)改編(개편)하였다. 當時(당시)行政區域(행정구역)九州(구주) 아래 117()()을 두고, () 아래에 3() 程度(정도)()을 두는 體系(체계)였다. 그러나, 9世紀(세기) 新羅(신라) ()混亂(혼란)으로 行政(행정)體系(체계)가 무너지면서 全國(전국)郡縣(군현)豪族(호족)들에 의한 半獨立(반독립)()自治體(자치체)()移行(이행)되었고, 이러한 狀態(상태)高麗(고려)後三國(후삼국)統一(통일)(936())한 ()에도 한동안 이어지다가 983()(高麗(고려) 成宗(성종) 2()) 全國(전국)에 12()設置(설치)하고 本格的(본격적)으로 地方官(지방관)派遣(파견)·常住(상주)시키면서 整理(정리)되었다. 그러나, 高麗(고려)時代(시대)에는 地方官(지방관)派遣(파견)되지 않는 屬郡(속군)屬縣(속현)이 많았다.

()郡守(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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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조선)時代(시대)에는 全國(전국)의 모든 郡縣(군현)地方官(지방관)派遣(파견)되면서 屬郡(속군)屬縣(속현)이 없어졌고, ()()()보다 規模(규모)가 작고, ()보다는 規模(규모)가 큰 地方(지방)基礎(기초)行政區域(행정구역)이었다. 《經國大典(경국대전)》에 따르면 ()全國的(전국적)으로 82()가 있었고, () 4()外官職(외관직)郡守(군수)가 다스리게 되어 있었다.

現在(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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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6()23() 全國(전국)을 23()로 나누면서 旣存(기존)()·()·()이 폐지되고, 全國(전국)行政(행정)單位(단위)一括(일괄) ()으로 編制(편제)되었다. 1896()8()4() 13道制(도제)實施(실시)되면서 一部(일부) ()濟州(제주)()復活(부활)하였다가, 濟州(제주)()1906()10()1() 濟州(제주)()이 되면서 現在(현재)와 같은 ()(()() 制度(제도)의 틀이 갖추어졌다. 以後(이후) 1914()4()1() 日帝(일제)()·() 統廢合(통폐합) () 行政區域(행정구역)改編(개편)한 것이 現在(현재)() 體制(체제)로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