明治憲法에 對한 解釋으로, 國家는 主權의 主體이며 天皇은 國家의 機關일 뿐이라고 明示하고 있습니다. 上杉愼吉等의 天皇機關說과 달리, 그는 大正民主化 以後 한동안 學界와 政治界에서 支配的인 位置에 있었다.
그러나 滿洲事變以後 軍部, 官僚, 右翼團體 等이 天皇機關說을 憲法에 違背되는 反逆 이데올로기라고 攻擊하면서 政治的爭點이 되었다. 이것이 1935年 이른바 國體明徵運動이다. 當時 衆議院議員이었던 美濃部達吉는 衆議院에서 自身을 辯護해 달라는 要請을 받고 反對意思를 分明히 밝혔지만, 衆議院議員인 江藤源九郞가 그를 '不敬'라고 非難하고, 政府는 戰爭海軍大臣의 壓力을 받아 '國家의 憲法'을 包含한 美濃部達吉의 3個 著書를 禁止했다. 그리하여 美濃部達吉自身도 衆議院議員職을 辭任하고, 天皇의 制度에 對한 理論은 政治的으로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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