元寇은 舊日本陸軍과 現陸上自衛隊의 軍歌이다. 明治25年(西紀 1892年)作.
背景紹介[編輯]
歷史上 몽골(元朝)은 西紀 1274年과 1281年에 두 次例에 걸쳐 日本을 侵略했지만 그럼에도 不拘하고 日本歷史上 가장 危險한 外敵의 侵略으로 日本이 거의 亡할 뻔했다. 그래서 이 두 戰爭以後 日本은 中國大陸에 對한 敵對感과 優越感이 눈에 띄게 높아져 中國政府로부터 疏外되었다.
그리고 1644年 明나라가 滅亡한 後 滿洲人이 入關하여 淸나라를 세우고 中國을 支配하기 始作하였다. '小中華'라는 줄거리가 깊은 日本은 自然스레 元과 宋을 滅亡시키는 一等을 보고 스스로를 華夏의 後繼者로 여긴다. 200餘年後 明治維新에 따라 西歐化의 봄바람을 맞은 日本은 經濟, 政治, 軍事力 모두 急騰하여 1890年代에 이르러 資本主義産業化를 이룩한 大日本帝國은 이미 낡은 大淸帝國을 뒤로했다. 이 時期에 日本은 北韓과 臺灣, 遼東을 倂合하기 위해 淸나라와의 戰爭을 渴望하기 始作했다.
淸日戰爭 前날인 1892年 朝野의 戰爭雰圍氣가 더욱 剛해지자 日本의 執權當局은 國民의 詐欺와 戰爭慾求을 高揚하기 爲해 뚜렷한 軍歌 몇 曲이 切實히 必要했다. 그래서 이 <元寇>가 誕生했다. 이 노래는 巧妙하게 日本歷史上 가장 큰 危機인 蒙古의 侵略을 素材로 當時中國을 統治하던 淸은 元과 마찬가지로 中國北方의 遊牧民族이 세운 政權으로 "그러나 이 노래가 中國戰爭에 對한 은유적인 意味를 分明히 느낄 수 있는 것은 노래에서 蒙古의 存在를 反復해서 强調하는 것이 아니라 四百州는 南宋 때의 行政區域體系로 後 日本은 '四百州'로 中國全土라고 불렀다. 그래서 隱喩的 意味가 强한 歌詞에 이 單語를 넣으면 意味가 自明해진다.
作者[編輯]
詞, 曲:나가이 켄시(永井建子)
歌詞[編輯]
一:鎌倉男兒 かまくらだんじ[編輯]
四百餘州を擧る 十萬餘騎之敵
國難于見る 弘安四年夏之頃
何ぞ恐ん我に 鎌倉男兒有
正義武斷之名 一喝して世に示す
二:多々良濱 たたらはま[編輯]
多々良濱邊之戎夷 其は何蒙古勢
傲慢無禮者 俱に天を戴かず
出や進て忠義に 鍛し我が腕
于ぞ國之爲 日本刀を試し見ん
三:筑紫之海 つくしのうみ[編輯]
心筑紫之海に 浪押分て行く
益荒猛夫之身 仇を討歸らずば
死して護國之鬼と 誓し箱崎之
神ぞ知ろし召す 大和魂潔し
四:玄海灘 げんかいなだ[編輯]
天は怒て海は 逆捲く大浪に
國に仇をなす 十餘萬之蒙古勢は
底之藻屑と消えて 殘るは唯三人
いつしか雲はれて 玄海灘月清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