宣統(선통)은 淸(청)나라 마지막 皇帝(황제)인 溥(부)儀(의)의 統治(통치) 期間(기간)에 使用(사용)된 年號(연호)이다. 一般的(일반적)으로 中國(중국) 歷史上(역사상) 마지막 年號(연호)로 看做(간주)된다.

1909年(년)에 使用(사용)이 始作(시작)되었고, 1912年(년) 初(초) 淸(청)나라 朝廷(조정)이 時局(시국)에 밀려 皇帝(황제) 退位(퇴위)를 宣言(선언)함으로써 淸(청)나라가 滅亡(멸망)하자 이 年號(연호)는 全國的(전국적)으로 使用(사용)이 停止(정지)되었다. 그러나 새로운 民國(민국)政府(정부)와 優待(우대)條件(조건)이 締結(체결)되었기 때문에 溥(부)儀(의)는 如前(여전)히 宮中(궁중)에 居住(거주)했으며, 宮內(궁내)에서는 優待(우대)條件(조건)에 依(의)해 이 年號(연호)의 使用(사용)이 繼續(계속) 容認(용인)되고 있었다.

1917年(년)7月(월), 張勳(장훈)이 主導(주도)한 宣統帝(선통제) 復位(복위)에서 이 年號(연호)가 다시 全國的(전국적)인 年號(연호)로 宣布(선포)되어 不過(불과) 12日間(일간)만 國家(국가)의 年號(연호)로 使用(사용)되었다. 復辟(복벽) 失敗(실패) 後(후), 年號(연호)는 다시 宮中(궁중) 限定(한정) 使用(사용)으로 돌아갔다. 1924年(년), 溥(부)儀(의)가 政變(정변)으로 인해 紫禁城(자금성) 皇宮(황궁)에서 追放(추방)된 後(후), 이 年號(연호)의 公的(공적) 地位(지위)는 消滅(소멸)했다.

淸(청)나라의 다른 公用語(공용어)로는 滿洲語(만주어)에서 이 年號(연호)는 "ᡤᡝᡥᡠᠩᡤᡝ
ᠶᠣᠰᠣ
", 蒙古語(몽고어)에서는 "ᠬᠡᠪᠲᠦ
ᠶᠣᠰᠣ
"로 表記(표기)된다.

其他(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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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年(년) 北京(북경)政變(정변) 以降(이강)에도 淸(청)나라에 忠誠(충성)을 다하는 各地(각지)의 遺臣(유신)과 復辟(복벽)派(파)는 民國(민국)紀元(기원)을 싫어하여 宣統(선통)의 年號(연호)를 繼續(계속) 使用(사용)했다. 이 때문에 이 무렵 一部(일부) 遺老(유로)들이 編纂(편찬)한 私撰(사찬) 史書(사서)나 年譜(연보)에서는 中華民國(중화민국) 成立(성립) 以後(이후)의 記事(기사)에도 "民國(민국)○年(년)"이 아닌 "宣統(선통)○年(년)"이 使用(사용)되고 있다. 이에 對(대)해 國民黨(국민당)을 비롯한 強(강)한 反(반)滿(만) 性向(성향)을 가진 勢力(세력)은 激烈(격렬)히 反撥(반발)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