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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敢히 그의 얼굴이 다르다고 말할 수 있다''': 全斗煥의 氣勢를 올리기 위해 管두환의 部下들은 占쟁이에게 關門의 寫眞을 보여주며 全斗煥에게 社長이 될 수 있는지 물었고, 全斗煥쟁이의 否定的인 對答을 들은 後 [[全斗煥]]의 部下들은 占쟁이를 붙잡고 "路資를 다시 한 番 잘 봐라! 씨발, 敢히 얼굴이 다르다고 말할 수 있어?!" 그 後 이 師父는 管두환의 얼굴이 나쁘다고 말한 다른 占쟁이들과 함께 逮捕되어 保安部 서빙銀行 出官室로 들어가 이 占쟁이들에게 暴力的인 方法으로 말을 바꾸도록 强要했다. 이 얼굴은 正말 사람들 사이에서 龍이고, 人間이 되기 위해 태어났다." 그래서 이 줄거리는 觀客들에게 弄談으로 '[[封建迷信]]을 깨뜨린다', '4名의 옛 開拓者를 깨뜨린다'라고 불렀고, 서빙圖書館에 占쟁이들이 모이는 場面은 弄談으로 '서빙圖書館 神學세미나'라고 불렸다. 同時에 '體面 差異'는 많은 視聽者들에게 전두환에 對한 同義語 또는 嘲弄거리가 되었고, 以後 많은 批判을 받았던 [[光州事件]] 等 전두환 在任 時節 벌어진 惡行과 맞물려 전두환 大統領 時節 형편없는 政治 成果와 朴正熙 時代보다 더 어두웠던 國家 [[權威主義]]를 批判하는 데에도 자주 쓰인다. | '''敢히 그의 얼굴이 다르다고 말할 수 있다''': 全斗煥의 氣勢를 올리기 위해 管두환의 部下들은 占쟁이에게 關門의 寫眞을 보여주며 全斗煥에게 社長이 될 수 있는지 물었고, 全斗煥쟁이의 否定的인 對答을 들은 後 [[全斗煥]]의 部下들은 占쟁이를 붙잡고 "路資를 다시 한 番 잘 봐라! 씨발, 敢히 얼굴이 다르다고 말할 수 있어?!" 그 後 이 師父는 管두환의 얼굴이 나쁘다고 말한 다른 占쟁이들과 함께 逮捕되어 保安部 서빙銀行 出官室로 들어가 이 占쟁이들에게 暴力的인 方法으로 말을 바꾸도록 强要했다. 이 얼굴은 正말 사람들 사이에서 龍이고, 人間이 되기 위해 태어났다." 그래서 이 줄거리는 觀客들에게 弄談으로 '[[封建迷信]]을 깨뜨린다', '4名의 옛 開拓者를 깨뜨린다'라고 불렀고, 서빙圖書館에 占쟁이들이 모이는 場面은 弄談으로 '서빙圖書館 神學세미나'라고 불렸다. 同時에 '體面 差異'는 많은 視聽者들에게 전두환에 對한 同義語 또는 嘲弄거리가 되었고, 以後 많은 批判을 받았던 [[光州事件]] 等 전두환 在任 時節 벌어진 惡行과 맞물려 전두환 大統領 時節 형편없는 政治 成果와 朴正熙 時代보다 더 어두웠던 國家 [[權威主義]]를 批判하는 데에도 자주 쓰인다. | ||
'''[[三淸敎育團]]''': [[全斗煥]]이 正式으로 選出되기 前에 '國家安全保衛'라는 이름으로 設立된 矯正機關을 말하며, 超法的 手段을 動員해 韓國 社會에서 '改過' '遷善'하기 위해 努力했으며, 三淸敎育團에 入隊한 사람들을 虐待해 人權을 侵害한 前歷이 있다(그러나 죽어야 할 崔太敏은 살아서 나왔다{{*|惡名 높은 '[[永生派]]'의 創始者인 [[崔太敏]]은 1980年 不正腐敗 嫌疑로 | '''[[三淸敎育團]]''': [[全斗煥]]이 正式으로 選出되기 前에 '國家安全保衛'라는 이름으로 設立된 矯正機關을 말하며, 超法的 手段을 動員해 韓國 社會에서 '改過' '遷善'하기 위해 努力했으며, 三淸敎育團에 入隊한 사람들을 虐待해 人權을 侵害한 前歷이 있다(그러나 죽어야 할 崔太敏은 살아서 나왔다{{*|惡名 높은 '[[永生派]]'의 創始者인 [[崔太敏]]은 1980年 不正腐敗 嫌疑로 山 淸 敎育團에 收監됐다가 政治犯이 아닌 經濟犯이라는 理由로 곧바로 풀려났다가 1994年 死亡했다. 그의 딸 [[崔順實]]은 2017年 [[朴槿惠]] [[女子親舊 政治 介入 事件]]의 主犯이다.}}). 팀의 實狀은 [[第6共和國]] [[盧武鉉]] 政權 때까지 드러나지 않았다. | ||
'''言論統廢合''': 1980年 5月 全斗煥 大統領이 全國的인 擴大 警戒令을 내린 以後 反體制 言論人에 對한 出版 中斷, 合倂, 强制 國有化, 解雇 等 言論 統制를 위해 韓國 言論에 對해 取한 一連의 措置를 말한다. 1988年 [[盧泰愚]]가 執權하고 나서야 이 政策은 廢止됐다. '5大 [[共産主義]]者'의 製作社인 MBC도 '統一과 言論 廢止'의 被害者 中 하나다.{{*|'言論統合廢止方案'에서 民營企業이었던 MBC 持分 70%를 國營放送公社(KBS)가 引受한 것은 僞裝上 國有化나 다름없다. | '''言論統廢合''': 1980年 5月 全斗煥 大統領이 全國的인 擴大 警戒令을 내린 以後 反體制 言論人에 對한 出版 中斷, 合倂, 强制 國有化, 解雇 等 言論 統制를 위해 韓國 言論에 對해 取한 一連의 措置를 말한다. 1988年 [[盧泰愚]]가 執權하고 나서야 이 政策은 廢止됐다. '5大 [[共産主義]]者'의 製作社인 MBC도 '統一과 言論 廢止'의 被害者 中 하나다.{{*|'言論統合廢止方案'에서 民營企業이었던 MBC 持分 70%를 國營放送公社(KBS)가 引受한 것은 僞裝上 國有化나 다름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