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司馬(사마)())

쌍화점 (討論(토론) | 寄與(기여))님의 2025() 9() 8() (()) 17:34 () (새 文書: '''晉'''은 中國 歷史上의 國家이다. 司馬懿(사마의)가 基礎를 다지고 司馬炎(사마염)()의 皇帝에게서 禪讓을 받아 建國하였다. 280年에 ()를 滅亡시켜 三國 分裂의 狀態를 完全히 終結시켰다. 正統 王朝의 하나라고 여겨진다. 歷史學上 通常的으로 匈奴(흉노)에 의해 세워진 ()나라에게 華北을 빼앗겨 一時的으로 滅亡한 後 南遷한 317年 以前의 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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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國(중국) 歷史上(역사상)國家(국가)이다. 司馬懿(사마의)基礎(기초)를 다지고 司馬炎(사마염)()皇帝(황제)에게서 禪讓(선양)을 받아 建國(건국)하였다. 280()()滅亡(멸망)시켜 三國(삼국) 分裂(분열)狀態(상태)完全(완전)終結(종결)시켰다. 正統(정통) 王朝(왕조)의 하나라고 여겨진다.

歷史學(역사학)() 通常的(통상적)으로 匈奴(흉노)에 의해 세워진 ()나라에게 華北(화북)을 빼앗겨 一時的(일시적)으로 滅亡(멸망)() ()()한 317() 以前(이전)統一(통일) 國家(국가)西晉(서진), 以後(이후)東晉(동진)이라 區分(구분)하여 부른다. 東晉(동진) 時代(시대)華北(화북)五胡十六國(오호십육국)이라 ()한다.

略史(약사)[編輯]

()나라 皇室(황실)先祖(선조)三國時代(삼국시대)에서 ()나라의 世族(세족)이었다. ()重臣(중신) 司馬懿(사마의)()()()() 以後(이후) ()()宗親(종친)肅淸(숙청)하고, 이를 契機(계기)司馬(사마)()()實權(실권)掌握(장악)하였다. 265(), ()() 司馬炎(사마염)()() ()()脅迫(협박)하여 帝位(제위)禪讓(선양)하게 하고, 國號(국호)를 "()"으로 改稱(개칭)하며 洛陽(낙양)()()하였다. 史書(사서)에서는 이 政權(정권)西晉(서진)이라 부른다.

280(), ()나라는 三國(삼국) () 唯一(유일)하게 남아 있던 ()滅亡(멸망)시키고 天下(천하)統一(통일)했으나, 平和(평화)롭고 安定(안정)狀況(상황)不過(불과) ()數年(수년)밖에 持續(지속)되지 못했다. 初期(초기)開國(개국) 皇帝(황제) 司馬炎(사마염)安定的(안정적)政治(정치)로 새로운 나라의 基盤(기반)을 다져나갔으나, ()()奢侈(사치)에 빠져 온 나라가 享樂(향악)의 도가니에 빠지고 말았다. ()()()卽位(즉위)하자 朝廷(조정)漸次(점차) 混亂(혼란)에 빠졌고, 兵權(병권)掌握(장악)諸侯(제후)()들이 잇달아 叛亂(반란)을 일으켜 歷史上(역사상) "()()()"으로 알려져 있다. 무려 16() 동안 混亂(혼란)()을 휩쓸고 있던 와중에, 異族(이족) 傭兵(용병)으로 雇用(고용)되어 中國(중국) 內陸(내륙)에 이미 定着(정착)해 있던 많은 遊牧民族(유목민족)들이 自立(자립)하며 各地(각지)侵略(침략)하기 始作(시작)하였다. 同時(동시)邊方(변방) 밖이나 中原(중원)으로 移住(이주)外族(외족)四夷(사이)機會(기회)를 엿보고 ()을 들었다. 이로 인해 "五胡(오호)()()"의 局面(국면)이 생겨나 많은 民衆(민중)世族(세족)南渡(남도)하기 始作(시작)했다. 316(), ()中央(중앙) 朝廷(조정)壞滅(괴멸)하고 華北(화북)五胡十六國(오호십육국) 時代(시대)로 접어들었다.

異族(이족)侵攻(침공)으로 大多數(대다수)司馬(사마)() 皇族(황족)이 죽임을 당했고, 거기서 살아남은 司馬(사마)() 一族(일족)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當時(당시) 建康(건강)에 있던 ()()() 司馬睿(사마예)南渡(남도)하는 中原(중원) 世族(세족)들과 江南(강남)土着(토착) 豪族(호족)들의 推戴(추대)에 힘을 얻는다. 317(), 司馬睿(사마예)建康(건강)에서 皇帝(황제)()하고 建康(건강)()를 두어 ()復興(부흥)宣言(선언)하며 華南(화남) 全土(전토)領有(영유)하였다. 이 時代(시대)歷史家(역사가)들에 의해 東晉(동진)이라 불린다. 中原(중원)世族(세족)民衆(민중)이 잇따라 ()()하여 이 華北(화북) 僑民(교민)南方(남방) 土着民(토착민)이 함께 居住(거주)하는 狀況(상황)形成(형성)되었다. 初期(초기)에는 王導(왕도) ()이 "()()()()" 政策(정책)採用(채용)하여 情勢(정세)安定(안정)시켰다.

東晉(동진) 時代(시대)를 통해 ()()衰退(쇠퇴)했고, 朝廷(조정)大權(대권)()世族(세족)掌握(장악)하고 있었다. 兵權(병권)外部(외부)에서는 ()했지만 內部(내부)에서는 ()했기 때문에 朝廷(조정)統制力(통제력)()했고, 많은 藩鎭(번진)野心(야심)을 품어 잇따라 ()()(), ()()(), ()()專政(전정)發生(발생)했다. 一部(일부) 士族(사족) 出身(출신) 有權者(유권자)들은 光復(광복)大志(대지)를 품고 여러 차례 北伐(북벌)을 꾀했으나, 朝廷(조정)野心家(야심가)들이 이를 利用(이용)勢力(세력)擴大(확대)할 것을 憂慮(우려)하여 大半(대반) 消極的(소극적)支持(지지)에 그쳤다.

383(), ()()建國(건국)()나라(前秦(전진))는 擧國的(거국적)軍勢(군세)動員(동원)하여 ()滅亡(멸망)시키려 했다. 亡國(망국)危機(위기)直面(직면)()君臣(군신)一心(일심)가 되어 ()水戰(수전)()에서 勝利(승리)基盤(기반)을 마련했다. 謝玄(사현) () 將軍(장군)들은 氣勢(기세)를 몰아 追擊(추격)하여 失地(실지)大量(대량)으로 收復(수복)하는 데 成功(성공)했다. 이로 인해 ()崩壞(붕괴)되었고, 北方(북방)軍事的(군사적)政治的(정치적) 情勢(정세)變化(변화)를 가져왔다. 그러나 ()나라 末期(말기)에는 朋黨(붕당) 싸움과 ()()()發生(발생)했다. 平民(평민)負擔(부담)은 무거웠고, 더욱이 ()()()이 일어났다. ()()()()占據(점거)하고 獨立(독립)했다. 마침내 劉裕(유유)擡頭(대두)해 여러 ()平定(평정)하자, 軍事力(군사력)을 바탕으로 帝位(제위)를 빼앗아 나라를 세워 "()"이라 ()했으며, 이로써 南北朝(남북조) 時代(시대)에 접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