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極大陸에 새로운 國際制度를 樹立한 條約으로, 1959年에 華府에서 署名되어 1961年에 發效되었다.
南極大陸은 酷毒한 氣象條件 때문에 사람의 定着이 어려웠고, 오랫동안 國家의 實效的支配에 미치지 못하는 茂朱의 땅이었다. 그러나, 20世紀에 들어서면, 科學技術의 發達에 따라, 南極大陸의 開發 利用도 不可能하지 않게 되었다. 이러한 背景 아래, 1908年에 英國이 南極의 一部地域의 領有를 主張한 것을 最初로, 新西蘭, 濠洲, 佛蘭西, 諾威, 智利, 亞爾然丁가 잇따라 領有를 主張했다. 이 7個國은 이른바 섹터主義를 主唱하고, 自國에 依한 發見이나 探險等을 理由로, 南極點을 頂點으로 하여 두 子午線으로 끼인 부채꼴 地域(섹터)의 領有를 主張했다. 그러나, 子午線을 定하는 方法이 제各各이기 때문에, 地域에 따라서는 各國의 領有主張이 競爭하여, 紛爭이 發生한 곳도 있다. 한便, 美國, 蘇聯 等은 섹터主義를 根據로 하는 領有에는 反對이며, 南極의 歸屬은 未確定인 채로 推移했다.
그 後, 1957-58年의 國際地球觀測年의 國際的인 南極觀測을 契機로, 南極領有를 둘러싼 國際對立을 回避하고, 南極地域을 科學的調査를 爲한 平和的인 國際協力의 場所로 만들려는 기운이 높아졌다. 59年, 美國의 主唱下에, 이 南極 觀測에 參加한 12個國(上記의 7個國과 美國, 蘇聯, 白耳義, 日本, 南阿共)에 依해 華府에서 南極會議가 開催되었지만, 그 成果가 南極條約이다. 條約은, 會議에 參加한 12個國의 署名, 批准을 얻어 61年에 發效되었지만, 그 後 追加로 數十個國의 加入이 있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1996年 2月 現在, 會員國은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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