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字(한자)韓國(한국)元祖(원조)()

十八子(십팔자) (討論(토론) | 寄與(기여))님의 2021()12()15()())14()51() () (出處表記)

漢字(한자)韓國(한국)()()()漢字(한자)東夷(동이)()이 만들었다는 ()이다.

中國(중국) 廣州(광주)()快報(쾌보)라는 新聞(신문)韓國(한국)漢字(한자)유네스코 文化遺産(문화유산)으로 登錄(등록)하려 하고 있으며, 서울大學校(대학교) 歷史學科(역사학과)의 박정수라는 敎授(교수)漢字(한자)韓民族(한민족)이 만들었다는 硏究(연구)結果(결과)發表(발표)했다는 記事(기사)內容(내용)을 처음으로 提起(제기), 以後(이후) 中央紙(중앙지)人民日報(인민일보)에까지 報道(보도)되면서 中國(중국)에서 漢字(한자)韓國(한국)元祖(원조)()韓國(한국)에서 一般的(일반적)인 것처럼 알려졌다. 이 記事(기사)日本(일본)에도 報道(보도)[1]되면서 日本(일본) 沿岸(연안)中心(중심)으로 마치 韓國人(한국인) 一般(일반)見解(견해)인것처럼 퍼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韓國(한국)漢字(한자)元祖(원조)()등은 온라인()에서 中國人(중국인)大韓民國(대한민국)認識(인식)廣範圍(광범위)惡影響(악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韓國(한국)外交(외교)通商(통상)()漢字(한자) 유네스코 登載(등재)示度(시도)에 대해 事實無根(사실무근)虛僞(허위)事實(사실)임을 밝히고 또한 서울大學校(대학교) 歷史學科(역사학과)에 박정수라는 敎授(교수)存在(존재)하지 않는다는 事實(사실)도 밝혀졌다. 나중에 人民日報(인민일보) 姉妹紙(자매지)()()時報(시보)漢字(한자)韓國(한국)()()()歪曲(왜곡)情報(정보)임을 스스로 正定(정정)報道(보도)하고[2] 온라인()極少數(극소수)가 그러한 主張(주장)을 하고 있으나, 전혀 韓國(한국)社會(사회)主流(주류)意見(의견)이 아님을 밝혔다.

中國(중국)元祖(원조)()反論(반론)

實際(실제)로 많은 韓國人(한국인)들이 漢字(한자)中國(중국)에서 發源(발원)中國(중국) 固有(고유)文字(문자)고, 우리나라에는 紀元(기원)前後(전후)하여 들어온 것으로 알고 있으나 事實(사실)은 아니다. 甲骨(갑골) 文字(문자)有名(유명)()(())나라는 東夷(동이)()國家(국가)最近(최근)까지 東夷(동이)()韓國(한국)民族(민족)指稱(지칭)하는 말이었지만, 이 '()나라가 東夷(동이)()이란' 事實(사실) 德分(덕분)中國(중국)은 다시 中華(중화) 三族(삼족)()主張(주장)하여 中國(중국)起原(기원)華族(화족), 苗族(묘족), 東夷(동이)()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主張(주장)을 펼친다. 알고보면 中國(중국)近間(근간)全部(전부) 東夷(동이)()으로 이루어져 있다. 苗族(묘족)이니 華族(화족)이니 東夷(동이)()에서 갈라진 것이다.

勿論(물론) 東夷(동이)() 自體(자체)를 우리 民族(민족)이라고 하기에는 힘들지만, 後代(후대)까지도 中國(중국) 歷史書(역사서)에는 東夷(동이)()이라는 ()()을 따로 두어 滿洲(만주)韓半島(한반도) 一帶(일대)民族(민족)들의 歷史(역사)를 적고 있는 것을 보면 우리가 確實(확실)華族(화족)敵對(적대)關係(관계)였던 東夷(동이)()인 것을 알 수 있다.

우리와 中國人(중국인)들은 '東夷(동이)()' 이라는 한 뿌리에서 나왔 그리고 그 東夷(동이)()正統性(정통성)을 이어받은 것은 우리이며, 出土(출토)遺物(유물)을 보면 古朝鮮(고조선)時代(시대)부터 이미 우리는 漢字(한자)()()한 것을 알 수 있다. 中國(중국)에서 傳來(전래)되었다기 보다는 原來(원래)부터 쓰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 맞다. 우리말은 漢字(한자) 한 글자에 한 ()音價(음가)가 있지만, 中國(중국)漢字(한자) 한 글()에 두세 ()音價(음가)配定(배정)되어 있는데, 바로 이것이 日本(일본)漢字(한자) 表現(표현)()처럼 中國(중국) 말이 漢字(한자)借用(차용)했다는 反證(반증)이다.

예컨대, '()'자를 보면 '국(韓國(한국))', '꾸오(中國(중국))', '고꾸(日本(일본))' 등으로 한 글()에 한 ()音價(음가)를 지닌 나라는 우리뿐이다. 더구나 中國(중국)四聲(사성)이라는 聲調(성조)까지 있어서 都大體(도대체)複雜(복잡)하여 漢字(한자)가 자기네 글()라는 主張(주장)()信憑性(신빙성)이 떨어진다. 單語(단어)를 보면 이런 差異(차이)는 더욱 確然(확연)히 드러난다. ()를 들어 '物件(물건)'에 ()表現(표현)을 우리는 바로 '物件(물건)(물건)'이라고 指稱(지칭)하는 反面(반면)中國(중국)은 '東西(동서)(똥시)'라는 전혀 글()意味(의미)와는 連結(연결)되지 않는 表現(표현)을 하고 있는데 이런 事例(사례)無數(무수)하게 많다. 이러한 것들은 말이 먼저 있어서 글자를 빌려 ()()하였기 때문에 發生(발생)現象(현상)인 것이다.

처음 漢字(한자)에는 ()은 있었지만 ()附與(부여)되지는 않았다. ()附與(부여)된것은 나중의 일이다. (), 漢字(한자)音價(음가)는 흔히들 "()() 表記(표기)"라는 것을 하기 ()해 만들어진 것이다.

漢字(한자)文字(문자)라면 한글은 發音記號(발음기호)該當(해당)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勿論(물론), 한글은 아주 科學的(과학적)作品(작품)同時(동시)에 엄청난 發明品(발명품)이다. 絶對(절대) 한글을 無視(무시)하는것이 아니며 漢文(한문)()()()正體性(정체성)强調(강조)하는 것이다. 요즘 漢字語(한자어)를 한글로 純化(순화)하자고 主張(주장)하는데, 漢字(한자)()말로 잃어버리면 안될 우리의 資産(자산)이다.

其他(기타) 學說(학설)

中國(중국)學者(학자) ()()()은《中國人(중국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中國(중국)文字(문자)起源(기원)必是(필시)中國(중국)中原(중원)이 아니다. 그 系統(계통)은 멀리 추운 北方(북방)에서 始作(시작)된 것을 ()()한 것이다」 -中國(중국)文字(문자)()制作(제작) ()()()()中國(중국)中原(중원) ()()()()()寒冷(한랭)()北方(북방).

中國(중국)()()()라는 史學者(사학자)가 쓴《中國(중국)史前(사전)史話(사화)》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記錄(기록)은 우리의 눈길을 끈다.

細石器文化(세석기문화)를 지닌 部族(부족)最初(최초)居住(거주)한 곳은 只今(지금)의 시베리아 바이칼 湖水(호수)近處(근처)이다. 곧 中國(중국)傳說(전설) 가운데 登場(등장)하는 炎帝(염제)神農(신농) ()本來(본래) 種族(종족)이 있던 곳이다」 -細石器文化(세석기문화)部族(부족) 最初(최초)()居住(거주) ()西伯利亞(서백리아)()()()()()附近(부근)() ()()中國(중국)傳說(전설)()()炎帝(염제)神農氏(신농씨)本族(본족)

또한 中國(중국)學者(학자) ()()()은《中國人(중국인)()()()()》에서 中國(중국)古代(고대) 文獻(문헌), 考古學的(고고학적)遺物(유물), 言語的(언어적)特性(특성), 人類學的(인류학적)特性(특성), 民俗(민속)文化的(문화적)特性(특성)()綜合的(종합적)으로 考察(고찰)한 뒤 中國人(중국인)()始原(시원)北方(북방)의 시베리아 一帶(일대)東北亞(동북아)쪽이라는 結論(결론)內裏(내리)고 있다.

()()()中國(중국)史前(사전)史話(사화)》 「以前(이전)부터 ()나라와 ()나라에 이르기까지 東夷(동이)()活動(활동) 範圍(범위)()包括的(포괄적)임을 알 수 있다. 이는 只今(지금)山東省(산동성) 全部(전부)河北省(하북성)渤海(발해) 沿岸(연안), 河南省(하남성)西北(서북), 安徽省(안휘성)中北(중북)() 地域(지역), 湖北省(호북성)()쪽, 그리고 遼東半島(요동반도)(遼寧省(요령성))와 朝鮮(조선)半島(반도)廣大(광대)區域(구역)이며, 山東半島(산동반도)(山東省(산동성))가 그 中心(중심) 地域(지역)이다」

中國(중국)學者(학자) ()()()著述(저술)한《中國(중국)民族史(민족사)》의 記錄(기록)을 보자.

「4千年(천년) () (…) 現在(현재)湖北省(호북성)湖南省(호남성)江西省(강서성) 等地(등지)를 이미 苗族(묘족)占領(점령)하고 있었으며, 中國(중국)漢族(한족)이 들어오면서 차츰 이들과 接觸(접촉)하게 되었다. 이 民族(민족)의 나라 이름은 ()()이며, 君主(군주)蚩尤(치우)이다」

苗族(묘족)은 오늘날 揚子江(양자강)中心(중심)으로 한 湖北(호북)湖南省(호남성) 等地(등지)分布(분포)되어 있는 少數民族(소수민족)이며, 위의 記錄(기록)에 따르면 이들도 古代(고대)에는 東夷(동이)()의 한 ()()였음을 알 수 있다. ()()()()九夷(구이)를 말하는 것으로, 이 九夷(구이)君主(군주)蚩尤(치우)라는 史實(사실)을 말하고 있다.

古史辯(고사변)》에서 中國(중국)學者(학자) ()()은, "玄鳥(현조)()나라 사람과 東夷(동이)()()()이다(玄鳥(현조)()()()東夷(동이)()祖先(조선)())."하였고, 또 같은 () 上篇(상편)에서는, "東夷(동이)()나라 사람과 同族(동족)이며, 그 神話(신화) 亦是(역시) 뿌리가 같다(東夷(동이)()()()同族(동족) ()神話(신화)()()())."

古史辯(고사변)》「東夷(동이)()나라 사람과 ()()이며, 그 神話(신화) 亦是(역시) ()()이 같다. 太湖(태호)()()()()()()()(), 그리고 설() ()이 같다고 하는 것은 近來(근래)의 사람들이 이미 明確(명확)證明(증명)하는 바다」


中國(중국)學者(학자) 勞幹(노간) 「우리들이 東方(동방) 사람들을 東夷(동이)라고 부른다. '()()'와 '()'()通用(통용)된다. '()'()와 '()'()는 또한 한 ()()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므로 中國語(중국어)에서 '()'()를 일컫는 것은 그 ()()東方(동방)에서 나왔으며, 萬若(만약) 東夷(동이)()文化的(문화적)으로 先進(선진)이고, 먼저 '()'을 ()()하였다고 하면 後代(후대)에 와서 西方(서방)에서 起源(기원)部族(부족)들이 이를 빌어 全人(전인)()名詞(명사)로 쓴 것이다」

()()()()司馬遷(사마천)의 '史記(사기)' 25()檀君(단군) 朝鮮(조선)中原(중원) 大陸(대륙)支配(지배)했다는 歷史的(역사적)史實(사실)을 거꾸로 뒤집어서, 마치 中國(중국)檀君(단군) 朝鮮(조선)支配(지배)한 것처럼 힘겹게 變造(변조) 作業(작업)을 해 놓은 것이다」

러시아의 歷史學者(역사학자) 유 엠 부찐도 그의 著書(저서)古朝鮮(고조선)》에서 "()() 以前(이전)玄道(현도)樂浪(악랑) 地域(지역)에 이르렀던 朝鮮(조선)領域(영역)은 한 번도 中國(중국)諸侯國(제후국)이 된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나라나 ()나라에 隸屬(예속)된 적이 없다."며, 箕子朝鮮(기자조선)()()()自身(자신)支配(지배)()에 있지 않은 領土(영토)를 마치 統治(통치)한 것처럼 꾸민 典型的(전형적)()라고 말하고 있다.

또, "中國(중국)歷史家(역사가)들은 ()나라가 中國(중국)東北(동북)邊方(변방)에 있었기 때문에 意識的(의식적)으로 ()나라의 役割(역할)誇張(과장)해서 表現(표현)해 왔다."며, 當時(당시) 國力(국력)으로 보아 ()나라가 朝陽(조양)에서 ()()에 이르는 長城(장성)을 쌓는 것은 不可能(불가능)하다고 强調(강조)하고 있다.


()()()中國(중국)史傳(사전)史話(사화)》▶「中國(중국)冊曆(책력)()東夷(동이)에서 始作(시작)되었다. 冊曆(책력)을 만든 사람은 羲和(희화)()이다. 그의 血統(혈통)()나라, ()나라의 東夷(동이)() ()()이다. 東夷(동이)가 달()을 만든 事實(사실)()()()餘地(여지)가 없다」

曆法(역법)寫實(사실) 東夷(동이)創始者(창시자)이며, 소호 以前(이전)에 이미 發明(발명)되었다」 -曆法(역법)()創始(창시)()東夷(동이) ()()() 以前(이전)便()()發明(발명)


中國(중국)學者(학자) ()()()自身(자신)著書(저서)中國人(중국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東方(동방) 人種(인종)五行(오행) 觀念(관념)原來(원래) 東北亞(동북아)에서 創始(창시)된 것을 ()()한 것이다」 -東方(동방)人種(인종)()五行(오행)觀念(관념) ()()創始(창시)()東北亞(동북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