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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韓國外交通商部는 漢字 유네스코 登載示度에 대해 事實無根의 虛僞事實임을 밝히고 또한 [[서울大學校]] 歷史學科에 박정수라는 敎授가 存在하지 않는다는 事實도 밝혀졌다. 나중에 人民日報 姉妹紙인 [[環球時報]]는漢字韓國原祖說이 歪曲된 情報임을 스스로 訂正報道하고[http://office.kbs.co.kr/sunonthetree/contents_view.html?log_no=43053] 온라인上의 極少數가 그러한 主張을 하고 있으나, 전혀 韓國社會主流의 意見이 아님을 밝혔다. | | 그러나 韓國外交通商部는 漢字 유네스코 登載示度에 대해 事實無根의 虛僞事實임을 밝히고 또한 [[서울大學校]] 歷史學科에 박정수라는 敎授가 存在하지 않는다는 事實도 밝혀졌다. 나중에 人民日報 姉妹紙인 [[環球時報]]는漢字韓國原祖說이 歪曲된 情報임을 스스로 訂正報道하고[http://office.kbs.co.kr/sunonthetree/contents_view.html?log_no=43053] 온라인上의 極少數가 그러한 主張을 하고 있으나, 전혀 韓國社會主流의 意見이 아님을 밝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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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主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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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 內容은 漢字韓國元祖說의 主張을 '''中立되지 않은 觀點'''에서 그대로 敍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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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中國元祖說에 反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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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實際로 많은 韓國人들이 漢字를 中國에서 發源한 中國 固有의 文字고, 우리나라에는 紀元을 前後하여 들어온 것으로 알고 있으나 事實은 아니다. 甲骨 文字로 有名한 商(殷)나라는 東夷族의 國家로 最近까지 東夷族은 韓國民族을 指稱하는 말이었지만, 이 '殷나라가 東夷族이란' 事實 德分에 中國은 다시 中華 三族說을 主張하여 中國의 起原이 華族, 苗族, 東夷族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主張을 펼친다. 알고보면 中國의 近間은 全部 東夷族으로 이루어져 있다. 苗族이니 華族이니 東夷族에서 갈라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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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勿論 東夷族 自體를 우리 民族이라고 하기에는 힘들지만, 後代까지도 中國 歷史書에는 東夷展이라는 別展을 따로 두어 滿洲와 韓半島 一帶의 民族들의 歷史를 적고 있는 것을 보면 우리가 確實히 華族과 敵對關係였던 東夷族인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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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와 中國人들은 '東夷族' 이라는 한 뿌리에서 나왔 그리고 그 東夷族의 正統性을 이어받은 것은 우리이며, 出土된 遺物을 보면 古朝鮮時代부터 이미 우리는 漢字를 事用한 것을 알 수 있다. 中國에서 傳來되었다기 보다는 原來부터 쓰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 맞다. 우리말은 漢字 한 글자에 한 個의 音價가 있지만, 中國은 漢字 한 글字에 두세 個의 音價가 配定되어 있는데, 바로 이것이 日本의 漢字 表現의 例처럼 中國 말이 漢字를 借用했다는 反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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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컨대, '國'자를 보면 '국(韓國)', '꾸오(中國)', '고꾸(日本)' 등으로 한 글字에 한 個의 音價를 지닌 나라는 우리뿐이다. 더구나 中國은 四聲이라는 聲調까지 있어서 都大體가 複雜하여 漢字가 자기네 글字라는 主張에 對한 信憑性이 떨어진다. 單語를 보면 이런 差異는 더욱 確然히 드러난다. 例를 들어 '物件'에 對한 表現을 우리는 바로 '物件(물건)'이라고 指稱하는 反面에 中國은 '東西(똥시)'라는 전혀 글字의 意味와는 連結되지 않는 表現을 하고 있는데 이런 事例는 無數하게 많다. 이러한 것들은 말이 먼저 있어서 글자를 빌려 事用하였기 때문에 發生한 現象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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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漢字에는 訓은 있었지만 音이 附與되지는 않았다. 音이 附與된것은 나중의 일이다. 卽, 漢字의 音價는 흔히들 "吏頭 表記"라는 것을 하기 爲해 만들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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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漢字가 文字라면 한글은 發音記號에 該當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勿論, 한글은 아주 科學的인 作品인 同時에 엄청난 發明品이다. 絶對 한글을 無視하는것이 아니며 漢文의 中要性과 正體性을 强調하는 것이다. 요즘 漢字語를 한글로 純化하자고 主張하는데, 漢字는 正말로 잃어버리면 안될 우리의 資産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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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其他 學說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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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中國의 學者 畢長朴은《中國人種北來說》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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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中國文字의 起源은 必是中國中原이 아니다. 그 系統은 멀리 추운 北方에서 始作된 것을 系承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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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中國文字之制作 必非始于中國中原 而係遠始于寒冷的北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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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中國의 徐亮之라는 史學者가 쓴《中國史前史話》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記錄은 우리의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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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細石器文化를 지닌 部族이 最初로 居住한 곳은 只今의 시베리아 바이칼 湖水近處이다. 곧 中國의 傳說 가운데 登場하는 炎帝神農 等의 本來 種族이 있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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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細石器文化部族 最初乃居住 今西伯利亞的貝加爾湖附近他 們乃中國傳說中的炎帝神農氏本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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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한 中國의 學者 畢長朴은《中國人種北來說》에서 中國의 古代 文獻, 考古學的遺物, 言語的特性, 人類學的特性, 民俗•文化的特性等을 綜合的으로 考察한 뒤 中國人種의 始原이 北方의 시베리아 一帶와 東北亞쪽이라는 結論을 內裏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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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徐亮之《中國史前史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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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以前부터 殷나라와 周나라에 이르기까지 東夷族의 活動 範圍는 實로 包括的임을 알 수 있다. 이는 只今의 山東省 全部와 河北省의 渤海 沿岸, 河南省의 西北, 安徽省의 中北部 地域, 湖北省의 東쪽, 그리고 遼東半島(遼寧省)와 朝鮮半島 등 廣大한 區域이며, 山東半島(山東省)가 그 中心 地域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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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中國의 學者 王桐齡이 著述한《中國民族史》의 記錄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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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千年 前 (…) 現在의 湖北省•湖南省•江西省 等地를 이미 苗族이 占領하고 있었으며, 中國의 漢族이 들어오면서 차츰 이들과 接觸하게 되었다. 이 民族의 나라 이름은 九麗이며, 君主는 蚩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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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苗族은 오늘날 揚子江을 中心으로 한 湖北•湖南省 等地에 分布되어 있는 少數民族이며, 위의 記錄에 따르면 이들도 古代에는 東夷族의 한 枝流였음을 알 수 있다. 九麗는 九黎•九夷를 말하는 것으로, 이 九夷의 君主가 蚩尤라는 史實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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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古史辯》에서 中國의 學者 楊寬은, "玄鳥는 殷나라 사람과 東夷의 組上神이다(玄鳥是殷人東夷的祖先神)."하였고, 또 같은 冊 上篇에서는, "東夷는 殷나라 사람과 同族이며, 그 神話 亦是 뿌리가 같다(東夷與殷人同族 其神話亦同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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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古史辯》「東夷는 殷나라 사람과 東族이며, 그 神話 亦是 根原이 같다. 太湖•帝俊•帝嚳•帝舜•少昊, 그리고 설契 等이 같다고 하는 것은 近來의 사람들이 이미 明確히 證明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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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中國의 學者 勞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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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들이 東方 사람들을 東夷라고 부른다. '夷字'와 '仁'字는 通用된다. '仁'字와 '人'字는 또한 한 根原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므로 中國語에서 '人'字를 일컫는 것은 그 根原이 東方에서 나왔으며, 萬若 東夷族이 文化的으로 先進이고, 먼저 '人'을 事用하였다고 하면 後代에 와서 西方에서 起源한 部族들이 이를 빌어 全人類의 名詞로 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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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吾鄕淸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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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司馬遷의 '史記' 25卷은 檀君 朝鮮이 中原 大陸을 支配했다는 歷史的인 史實을 거꾸로 뒤집어서, 마치 中國이 檀君 朝鮮을 支配한 것처럼 힘겹게 變造 作業을 해 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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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의 歷史學者 유 엠 부찐도 그의 著書《古朝鮮》에서 "漢代 以前에 玄道와 樂浪 地域에 이르렀던 朝鮮의 領域은 한 번도 中國의 諸侯國이 된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燕나라나 周나라에 隸屬된 적이 없다."며, 箕子朝鮮說은 周王이 自身의 支配下에 있지 않은 領土를 마치 統治한 것처럼 꾸민 典型的인 例라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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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中國의 歷史家들은 燕나라가 中國의 東北쪽 邊方에 있었기 때문에 意識的으로 燕나라의 役割을 誇張해서 表現해 왔다."며, 當時 國力으로 보아 燕나라가 朝陽에서 襄平에 이르는 長城을 쌓는 것은 不可能하다고 强調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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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徐亮之《中國史傳史話》▶「中國의 冊曆法은 東夷에서 始作되었다. 冊曆을 만든 사람은 羲和子이다. 그의 血統은 殷나라, 商나라의 東夷族 組上이다. 東夷가 달曆을 만든 事實은 實로 意問의 餘地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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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曆法은 寫實 東夷가 創始者이며, 소호 以前에 이미 發明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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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曆法實創始於東夷 而且小 以前便已發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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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中國의 學者 畢長朴은 自身의 著書《中國人種北來說》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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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東方 人種의 五行 觀念은 原來 東北亞에서 創始된 것을 系承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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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東方人種之五行觀念 原係創始于東北亞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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