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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漢字韓國原祖說'''은 [[한자|漢字]]를 東夷族이 만들었다는 說이다. | | '''漢字韓國原祖說'''은 [[한자|漢字]]를 東夷族이 만들었다는 說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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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中國 [[廣州]]의 [[新快報]]라는 新聞이 韓國이 [[ 한자| 漢字]]를 [[ 유네스코 문화유산| 유네스코 文化遺産]]으로 登錄하려 하고 있으며, 서울大學校 歷史學科의 박정수라는 敎授가 漢字는 韓民族이 만들었다는 硏究結果를 發表했다는 記事內容을 처음으로 提起, 以後 中央紙인 [[인민일보|人民日報]]에까지 報道되면서 中國에서 漢字韓國元祖說이 韓國에서 一般的인 것처럼 알려졌다. 이 記事는 日本에도 報道[http://www.j-cast.com/2006/11/21003931.html]되면서 日本 沿岸을 中心으로 마치 韓國人 一般의 見解인것처럼 퍼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韓國漢字元祖說등은 온라인上에서 中國人의 大韓民國認識에 廣範圍한 惡影響을 미쳤 다. 그러나 韓國外交通商部는 漢字 유네스코 登載示度에 대해 事實無根의 虛僞事實임을 밝히고 또한 [[서울대학교|서울大學校]] 歷史學科에 박정수라는 敎授가 存在하지 않는다는 事實도 밝혀졌다. 나중에 人民日報 姉妹紙인 [[環球時報]]는漢字韓國原祖說이 歪曲된 情報임을 스스로 正定報道하고[http://office.kbs.co.kr/sunonthetree/contents_view.html?log_no=43053] 온라인上의 極少數가 그러한 主張을 하고 있으나, 전혀 韓國社會主流의 意見이 아님을 밝혔 다. | | 中國 [[廣州]]의 [[新快報]]라는 新聞이 韓國이 [[漢字]]를 [[유네스코 文化遺産]]으로 登錄하려 하고 있으며, 서울大學校 歷史學科의 박정수라는 敎授가 漢字는 [[ 韓民族]] 이 만들었다는 硏究結果를 發表했다는 記事內容을 처음으로 提起, 以後 中央紙인 [[인민일보|人民日報]]에까지 報道되면서 中國에서 漢字韓國元祖說이 韓國에서 一般的인 것처럼 알려졌다. 이 記事는 日本에도 報道[http://www.j-cast.com/2006/11/21003931.html]되면서 日本 沿岸을 中心으로 마치 韓國人 一般의 見解인것처럼 퍼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韓國漢字元祖說등은 온라인上에서 中國人의 大韓民國 認識에 廣範圍한 惡影響을 미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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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中國元祖說에 反論==
| | 그러나 韓國 外交通商部는 漢字 유네스코 登載示度 에 대해 事實 無根 의 虛僞 事實 임 을 밝히 고 또한 [[ 서 울大學校]] 歷史 學科 에 박정 수라는 敎授 가 存在 하지 않는 다 는 事 實도 밝혀졌 다. 나중에 人民日報 姉妹紙 인 [[環球 時 報]] 는漢字 韓 國原 祖說 이 歪曲 된 情報임 을 스스 로 訂正報道 하고[http://office.kbs.co.kr/sunonthetree/contents_view.html?log_no=43053] 온라인上 의 極 少數가 그러한 主張 을 하고 있으나, 전혀 韓 國 社會主流 의 意見 이 아님 을 밝혔 다. |
| 實際로 많은 韓國 人들이 漢字 를 中國에서 發源한 中國 固有의 文字고, 우리나라 에 는 紀元을 前後하여 들어온 것으로 알고 있으나 事實 은 아니다. 甲骨 文字로 有名한 商(殷)나라는 東夷族 의 國家로 最近까지 東夷族은 韓國民族을 指稱하는 말이었지만, 이 '殷나라가 東夷族이란' 事實 德分에 中國은 다시 中華 三族說 을 主張하여 中國의 起原이 華族, 苗族, 東夷族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主張을 펼친다. 알 고 보면 中國의 近間은 全部 東夷族으로 이루어져 있다. 苗族이니 華族이니 東夷族에 서 갈라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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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勿論 東夷族 自體를 우리 民族이라고 하기에는 힘들지만, 後代까지도 中國 歷史 書 에 는 東夷展이라는 別展을 따로 두어 滿洲와 韓半島 一帶의 民族들의 歷史를 적고 있는 것을 보면 우리가 確實히 華族과 敵對關係였던 東夷族인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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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와 中國人들은 '東夷族' 이 라는 한 뿌리에서 나왔 그리고 그 東夷族의 正統性을 이어받은 것은 우리이며, 出土된 遺物을 보면 古朝鮮時代부터 이미 우리는 漢字를 事用한 것을 알 수 있다. 中國에서 傳來되었다기 보다는 原來부터 쓰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 맞다. 우리말은 漢字 한 글자에 한 個의 音價 가 있지만, 中國은 漢字 한 글字에 두세 個의 音價가 配定되어 있는데, 바로 이것이 日本의 漢字 表現의 例처럼 中國 말이 漢字를 借用했다는 反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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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컨대, '國'자를 보면 '국(韓國)', '꾸오(中國)', '고꾸(日本)' 등으로 한 글字에 한 個의 音價를 지닌 나라는 우리뿐이다. 더구나 中國은 四聲이라는 聲調까지 있어서 都大體가 複雜 하 여 漢字가 자기네 글字라는 主張에 對한 信憑性이 떨어진다. 單語를 보면 이런 差異는 더욱 確然히 드러난다. 例를 들어 '物件'에 對한 表現을 우리는 바로 '物件(물건)'이라고 指稱하는 反面에 中國은 '東西(똥시)'라는 전혀 글字의 意味와는 連結되 지 않는 表現을 하고 있 는 데 이런 事 例는 無數하게 많 다. 이러한 것들은 말이 먼저 있어서 글자를 빌려 事用하였기 때문에 發生한 現象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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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漢字에는 訓은 있었지만 音이 附與되지는 않았다. 音이 附與된것은 나중 의 일이다. 卽, 漢字의 音價는 흔히들 "吏頭 表記"라는 것을 하기 爲해 만들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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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漢字가 文字라면 한글은 發音記號 에 該當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勿論, 한글은 아주 科學的인 作品 인 同 時 에 엄청난 發明品이다. 絶對 한글을 無視하는것이 아니며 漢文의 中要性과 正體性을 强調하 는 것이다. 요즘 漢字 語를 한글로 純化하자고 主張하는데, 漢字는 正말로 잃어버리면 안될 우리의 資産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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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其他 學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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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中 國 의 學者 畢長朴은《中國人種北來說》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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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中國文字의 起源은 必是中國中 原이 아니다. 그 系統은 멀리 추운 北方에서 始作 된 것을 系承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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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中國文字之制作 必非始于中國中原 而係遠始于寒冷的北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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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中國의 徐亮之라는 史學者가 쓴《中國史前史話》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記錄은 우리의 눈길 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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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細石器文化를 지닌 部族이 最初 로 居住한 곳은 只今의 시베리아 바이칼 湖水近處이다. 곧 中國의 傳說 가운데 登場 하 는 炎帝神農 等의 本來 種族이 있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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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細石器文化部族 最初乃居住 今西伯利亞的貝加爾湖附近他 們乃中國傳說中的炎帝神農氏本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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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한 中國의 學者 畢長朴은《中國人種北來說》에서 中國의 古代 文獻, 考古學的遺物, 言語的特性, 人類學的特性, 民俗•文化的特性等을 綜合的으로 考察한 뒤 中國人種의 始原이 北方의 시베리아 一帶와 東北亞쪽이라는 結論을 內裏 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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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徐亮之《中國史前史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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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以前부터 殷나라와 周나라에 이르기까지 東夷族의 活動 範圍는 實로 包括的임을 알 수 있다. 이는 只今의 山東省 全部와 河北省의 渤海 沿岸, 河南省의 西北, 安徽省의 中北部 地域, 湖北省의 東쪽, 그리고 遼東半島(遼寧省)와 朝鮮半島 등 廣大한 區域이며, 山東半島(山東省)가 그 中心 地域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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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中國의 學者 王桐齡이 著述한《中國民族史》의 記錄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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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千年 前 (…) 現在의 湖北省•湖南省•江西省 等地를 이미 苗族이 占領하고 있었으며, 中國의 漢族이 들어오면서 차츰 이들과 接觸하게 되었다. 이 民族 의 나라 이름은 九麗이며, 君主는 蚩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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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苗族은 오늘날 揚子江을 中心으로 한 湖北•湖南省 等地에 分布되어 있는 少數 民族이며, 위의 記錄에 따르면 이들도 古代에는 東夷族의 한 枝流였음을 알 수 있다. 九麗는 九黎•九夷를 말하는 것으로, 이 九夷의 君主 가 蚩尤라는 史實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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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古史辯》에서 中國의 學者 楊寬은, "玄鳥는 殷나라 사람과 東夷의 組上神이다(玄鳥是殷人東夷的祖先神)."하였고, 또 같은 冊 上篇에서는, "東夷는 殷나라 사람과 同族이며, 그 神話 亦是 뿌리가 같다(東夷與殷人同族 其神話亦同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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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古史辯》「東夷는 殷나라 사람과 東族이며, 그 神話 亦是 根原이 같다. 太湖•帝俊•帝嚳•帝舜•少昊, 그리고 설契 等이 같다고 하는 것은 近來의 사람들이 이미 明確히 證明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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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中國의 學者 勞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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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들이 東方 사람들을 東夷라고 부른다. '夷字'와 '仁'字는 通用된다. '仁'字와 '人'字는 또한 한 根原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 므로 中國語에서 '人'字를 일컫는 것은 그 根原이 東方에서 나왔으며, 萬若 東夷族이 文化的으로 先進이고, 먼저 '人'을 事用하였다고 하면 後代에 와서 西方에서 起源 한 部族들이 이를 빌어 全人類의 名詞로 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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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吾鄕淸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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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司馬遷의 '史記' 25卷은 檀君 朝鮮이 中原 大陸 을 支配했다는 歷史的인 史實을 거꾸로 뒤집어서, 마치 中國이 檀君 朝鮮을 支配한 것처럼 힘겹게 變造 作業을 해 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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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의 歷史學者 유 엠 부찐도 그의 著書《古朝鮮》에서 "漢代 以前에 玄道와 樂浪 地域에 이르렀던 朝鮮의 領域은 한 번도 中國의 諸侯國이 된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燕나라나 周나라에 隸屬된 적이 없다."며, 箕子朝鮮說은 周王이 自身의 支配下에 있지 않은 領土를 마치 統治한 것처럼 꾸민 典型的인 例라고 말 하고 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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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中國의 歷史家들은 燕나라가 中國의 東北쪽 邊方에 있었기 때문에 意識的 으 로 燕 나 라의 役割을 誇張해서 表現해 왔다."며, 當時 國 力으로 보아 燕나라가 朝陽에서 襄平에 이르는 長城을 쌓는 것은 不可能하다고 强調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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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徐亮之《中國史傳史話》▶「中國 의 冊曆法은 東夷에서 始作되었다. 冊曆을 만든 사람은 羲和子 이 다. 그의 血統은 殷나라, 商나라의 東夷族 組上이다. 東夷가 달曆 을 만든 事實은 實로 意問의 餘地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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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曆法은 寫實 東夷가 創始者이며, 소호 以前에 이미 發明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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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曆法實創始於東夷 而且小 以前便已發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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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中國의 學者 畢長朴은 自身의 著書《中國人種北來說》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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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東方 人種의 五行 觀念은 原來 東北亞에서 創始된 것을 系承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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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東方人種之五行觀念 原係創始于東北亞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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