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모 行進曲(행진곡)(西班牙語: El Himno de Bayamo), 玖馬(구마)의 國歌(국가). 直譯(직역)하면 "바야모의 노래"이지만, 行進曲(행진곡)風(풍)의 音樂(음악) 때문에 "바야모 行進曲(행진곡)"으로 意譯(의역)되기도 한다.

西班牙(서반아)의 壓制(압제)에 玖馬(구마)人(인)들이 抵抗(저항)하면서 始作(시작)된 十年(십년)戰爭(전쟁)(西班牙語: Guerra de los Diez Años)이 한창이던 1868年(년)에 페드로 (또는 페루초) 피게레도(西班牙語: Pedro(Perucho) Figueredo, 1818-1870)가 作詞(작사)/作曲(작곡)했다. 다만 멜로디는 그 前(전) 해였던 1867年(년)에 만든 것을 그대로 썼고, 玖馬(구마)獨立軍(독립군)이 西班牙(서반아)側(측)의 據點(거점)이었던 바야모 兵營(병영)을 占領(점령)한 것을 自祝(자축)하고자 여섯 節(절) 짜리 歌詞(가사)를 붙여 完成(완성)했다.

피게레도는 1870年(년)에 西班牙(서반아)軍(군)에 붙잡혀 反逆罪(반역죄)로 銃殺刑(총살형)에 處(처)해졌고 이 曲(곡)도 禁止曲(금지곡)이 되었지만, 以後(이후)에도 民衆歌謠(민중가요)처럼 獨立軍(독립군)에 依(의)해 繼續(계속)愛唱(애창)되었다. 1898年(년)에는 안토니오 로드리게스 페레르(西班牙語: Antonio Rodriguez Ferrer, 1864-1935)가 팡파르風(풍)의 器樂(기악)序奏(서주)를 붙였고, 1902年(년)에 玖馬(구마)가 公式的(공식적)으로 獨立(독립)을 宣言(선언)하면서 同時(동시)에 國家(국가)로 採擇(채택)되었다. 다만 이 때는 너무 西班牙(서반아)까 性向(성향)이 짙고 장황하다는 理由(이유)로 4~6節(절)을 뺀 1~2節(절) 만이 採擇(채택)되었고, 以後(이후) 1959年(년)에 피델 카스트로가 이끈 革命軍(혁명군)이 풀헨시오 바티스타의 政權(정권)을 무너뜨린 뒤에도 繼續(계속)國歌(국가)로 使用(사용)되고 있다.

아르헨티나 國歌(국가)처럼 各(각) 節(절)마다 다른 音樂(음악)을 쓰는 統節(통절)形式(형식)을 取(취)하고 있다. 하지만 길이는 훨씬 짧다 熾烈(치열)한 獨立(독립)戰爭(전쟁)中(중)에 만들어진 曲(곡)인 만큼 라 마르세예즈나 義勇軍(의용군)進行(진행)曲(곡)처럼 歌詞(가사)가 꽤 好戰的(호전적)이다.

歌詞(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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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 combate, corred, Bayameses!,
Que la patria os contempla orgullosa;
No temáis una muerte gloriosa,
Que morir por la patria es vivir.

En cadenas vivir es vivir
en afrenta y oprobio sumido,
Del clarín escuchad el sonido;
¡A las armas, valientes, corred!

武器(무기)를 들어라 바야모의 사내들아!
祖國(조국)이 그대들을 자랑스레 지켜보고 있으니.
영광스런 죽음을 두려워 말라,
殉國(순국)은 곧 永生(영생)이다.

사슬에 묶여사는것은
不名譽(불명예)와 恥辱(치욕)으로 사는 것이니,
클라리온[1] 소리를 들어라.
勇敢(용감)한 者(자)여, 서둘러 戰場(전장)으로!

  1. ↑ 喇叭(나팔)의 一種(일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