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寺內正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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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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櫻圃 魯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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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出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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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2年2月24日 (嘉永五年二月五日) Flag of Japan (1870–1999).svg 日本周防國吉敷郡平井村[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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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死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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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年11月3日(享年 67歲) Flag of Japan (1870–1999).svg 日本東京府平井赤十字病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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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墓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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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口縣山口市宮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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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所屬政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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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所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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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稱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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元帥陸軍大將 正二位 伯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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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父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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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宇多田正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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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配偶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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寺內타니 寺內瀧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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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子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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寺內壽一(長男) 寺內毅雄(次男) 兒玉澤子(長女) 福羽須惠(次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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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宗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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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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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署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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寺內正毅(데라우치 마사타케)는 明治時代, 大正時代의 日本의 陸軍 軍人, 政治家이다.
明治時代에서 大正時代에 걸쳐 陸軍 軍人으로 活躍했고, 第1次 桂 內閣에서는 兒玉源太郞의 後任으로 陸軍大臣에 就任했다. 以後 第1次 西園寺 內閣과 第2次 桂 內閣에서도 陸軍大臣을 歷任했다. 그 後 曾禰荒助의 後任으로 韓國統監에 就任하여 日本으로의 倂合을 推進했다. 韓日合邦 後 朝鮮總督으로 就任했다. 나중에 內地(日本 本土)로 歸還하자 寺內 內閣을 發足시켜 內閣總理大臣을 맡는 同時에 外務大臣과 大藏大臣과 같은 國務大臣을 兼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