八條宮智仁親王은 日本의 皇族으로, 戰國時代 末期에서 江戶時代 初期의 人物이다. 傍系 宮家인 八條宮(後日의 桂宮)의 初代 當主이다.
어린 時節 이름은 六宮, 胡佐麿, 員丸, 通稱은 幸丸, 友輔. 一般的으로는 八條皇子(八條の皇子)라고 불렸다.
經歷[編輯]
바로 위 兄인 邦慶親王이 織田信長의 猶子였던 것을 본받아 智仁王도 1586年 今出川晴季의 周旋으로 豐臣秀吉의 猶子가 되어 將次 關白 職位를 約束받았다. 그러나 1589年, 豐臣秀吉에게 親子息인 豐臣鶴松이 태어나면서 해지되었고, 같은 해 12月에 豐臣秀吉의 奏請으로 八條宮家를 創設했다.
1591年 1月, 親王宣下를 받고 元服하여 式部卿에 任命되었다. 1601年 3月 一品親王에 冊封되었다. 1600年 7月 細川幽齋로부터 古今傳授를 받고, 1625年 12月 이를 조카인 後水尾天皇에게 傳하여 이른바 御所傳授의 길이 열렸다. 또한 庭園 造成에도 뛰어나 1620年부터 家門에 내려오는 領地의 下桂村에 別業을 造成한다. 이 別業이 只今의 桂離宮이며, 八條宮은 後날 桂宮으로 불렸다.
1598年, 豐臣秀吉이 죽은 直後 兄인 後陽成天皇은 當初 皇位 繼承者로 指目된 親아들 良仁親王을 廢位하고 同生인 智仁親王에게 皇位를 물려주려고 했으나 周圍의 사람들의 反對로 斷念했다. 結局 皇位는 1611年 良仁親王의 同生인 政仁親王(後水尾天皇)이 繼承하게 된다.
1629年 4月, 腫瘍을 앓고 世上을 떠났다. 享年 51歲. 後孫들은 八條宮家(桂宮家)와 淸華家의 廣幡家로 繁昌했다.
文藝[編輯]
學問과 文藝에 造詣가 깊어 어려서부터 和歌와 連歌에 能通했다. 1596年 細川幽齋에게 “伊勢物語”, “雨中吟” 等의 講義 解釋을 듣고 二條派 歌學(和歌의 學問)을 배웠으며, 里村紹巴에게 連歌를 배웠다. 以後 自宅에서 자주 노래 모임을 가졌고, 近衞信尋(兄 後陽成天皇의 親子息) 等 後學 歌人 養成에도 힘썼다. 自筆로 쓴 和歌와 私撰集이 多數 남아있으며, “智仁親王御記”, “煙草說”, “江戶道中日記” 等의 著述이 알려져 있다. 또한 古典의 蒐集과 筆寫에도 熱心이어서 現在 “桂宮本”이라 불리는 藏書의 基礎를 닦았다.
系譜[編輯]
- 아버지: 誠仁親王
- 어머니: 勸修寺晴子 (勸修寺晴右의 딸)
- 正室: 京極常子 (京極高知의 딸)
- 아들: 八條宮智忠親王
- 딸: 珠光院
- 아들: 良尙入道親王
- 아들: 廣幡忠幸
- 側室: 九條兼孝의 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