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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尾張國]] [[愛知郡]] 中村鄕의 下層民의 집에서 태어났다고 되어있다. 當初 今川氏에 奉仕도 出奔한 後 [[織田信長]]을 섬겼으며 [[織田]] 家門 안에서 漸次 頭角을 나타내기 始作했다. [[織田信長]]이 [[本能寺의 變]]으로 죽자 [[中國地方]]에서 大軍을 이끌고 京으로 돌아와 [[山崎戰鬪]]에서 [[明智光秀]]를 擊破하고, [[淸洲會議]]에서 織田信長의 孫子 [[三法師]]를 가지고 織田家門 內部의 勢力다툼을 이기고, 織田信長을 代身해 그의 事業을 繼承하였다. 그 後, [[大坂城]]을 쌓았으며 關白, 太政大臣에 任命되었다. | [[尾張國]] [[愛知郡]] 中村鄕의 下層民의 집에서 태어났다고 되어있다. 當初 今川氏에 奉仕도 出奔한 後 [[織田信長]]을 섬겼으며 [[織田]] 家門 안에서 漸次 頭角을 나타내기 始作했다. [[織田信長]]이 [[本能寺의 變]]으로 죽자 [[中國地方]]에서 大軍을 이끌고 京으로 돌아와 [[山崎戰鬪]]에서 [[明智光秀]]를 擊破하고, [[淸洲會議]]에서 織田信長의 孫子 [[三法師]]를 가지고 織田家門 內部의 勢力다툼을 이기고, 織田信長을 代身해 그의 事業을 繼承하였다. 그 後, [[大坂城]]을 쌓았으며 關白, 太政大臣에 任命되었다. | ||
또, 朝廷으로부터 [[豊臣]]이라는 姓을 下賜받아 [[日本]] 全國을 統一하는 데 이바지하였다. 太閤檢地와 刀狩令, 惣無事令, 石高制라는 政策을 펴 日本 國內를 安定시켰지만, 理由는 諸說이 있지만 [[明나라]]의 征服을 決意하고 [[朝鮮]]에 出兵한 文祿·慶長의 役([[壬辰倭亂]]) 中에 嗣子 [[豊臣秀賴]]를 [[德川家康]] 等 五大老에 寄託하여 病沒했다. | 또, 朝廷으로부터 [[豊臣]]이라는 姓을 下賜받아 [[日本]] 全國을 統一하는 데 이바지하였다. 太閤檢地와 刀狩令, 惣無事令, 石高制라는 政策을 펴 日本 國內를 安定시켰지만, 理由는 諸說이 있지만 [[明나라]]의 征服을 決意하고 [[朝鮮]]에 出兵한 文祿·慶長의 役([[壬辰倭亂]]) 中에 嗣子 의 [[豊臣秀賴]]를 [[德川家康]] 等 五大老에 寄託하여 病沒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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