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世界4大文明"의 두 版 사이의 差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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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神話]]를 믿었으며 메소포타미아 文明과 마찬가지로 神權政治를 實施한 祭政一致 社會였다. 階級은 支配層(祭司長, 官僚)와 被支配層(百姓)으로 區分되었다.
[[이집트 神話]]를 믿었으며 메소포타미아 文明과 마찬가지로 神權政治를 實施한 祭政一致 社會였다. 階級은 支配層(祭司長, 官僚)와 被支配層(百姓)으로 區分되었다.


 그러나 이집트의 경우 [[나일江]]의 氾濫이 週期的이었고 閉鎖的인 地形을 保有하여 異民族의 侵入을 防禦하기 容易했다. 이러한 까닭에 메소포타미아 文明과 비교하여 이집트 사람들은 現世 以外에도 來世를 생각할 餘裕가 있었으며 死後世界에 대한 觀念이 發達하게 되었다. 卽 靈魂의 存在를 믿었으며 이러한 傾向은 이집트 特有의  葬風習인 [[미라]]와 書籍 [[死者의 書]]에서 잘 드러난다.
 그러나 이집트의 경우 [[나일江]]의 氾濫이 週期的이었고 閉鎖的인 地形을 保有하여 異民族의 侵入을 防禦하기 容易했다. 이러한 까닭에 메소포타미아 文明과 비교하여 이집트 사람들은 現世 以外에도 來世를 생각할 餘裕가 있었으며 死後世界에 대한 觀念이 發達하게 되었다. 卽 靈魂의 存在를 믿었으며 이러한 傾向은 이집트 特有의 葬 風習인 [[미라]]와 書籍 [[死者의 書]]에서 잘 드러난다.


 또한 閉鎖的인 地形은 오랫동안 王國이 維持되는 契機가 되었다. 太陽神 라의 後孫으로 여겨진 [[파라오]]들에 依해 古王國, 中王國, 新王國으로 이어진다.<ref>埃及文明의 마지막 왕조는 프톨레마이오스 王朝였으며 로마에 征服당한다. [[클레오파트라]]와 [[율리우스 시저]]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카이사리온이 있었다.</ref>
 또한 閉鎖的인 地形은 오랫동안 王國이 維持되는 契機가 되었다. 太陽神 라의 後孫으로 여겨진 [[파라오]]들에 依해 古王國, 中王國, 新王國으로 이어진다.<ref>埃及文明의 마지막 왕조는 프톨레마이오스 王朝였으며 로마에 征服당한다. [[클레오파트라]]와 [[율리우스 시저]]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카이사리온이 있었다.</ref>

2022年5月27日(金)16時46分 版

槪要(개요)

世界(세계)四大(사대)文明(문명)이란 中國(중국), 印度(인도), 이집트(埃及(애급)), 메소포타미아 地域(지역)發興(발흥)했던 古代(고대) 文明(문명)意味(의미)한다.

文明(문명) 모두 農耕(농경)有利(유리)溫和(온화)氣候(기후)地域(지역)과 큰 () 流域(유역)에서 發生(발생)했다는 共通點(공통점)이 있다.

參考(참고)로 네 文明(문명) 모두 靑銅器(청동기) 時代(시대)該當(해당)하며 또한 歷史時代(역사시대)該當(해당)한다. 그러나 韓國(한국)()境遇(경우) 鐵器(철기) 時代(시대)부터 歷史時代(역사시대)進入(진입)한다.

目錄(목록)

메소포타미아 文明(문명)

메소포타미아는 "두 () 사이의 地域(지역)"이라는 의미로 티그리스()유프라테스() 周邊(주변)에서 發生(발생)文明(문명)이다. 수메르는 人類(인류) 最初(최초)文明(문명)으로 紀元前(기원전) 3500()()에 수메르()들이 우르, 우르크, 라가시 ()都市國家(도시국가)들을 建設(건설)하였다.

메소포타미아는 開放的(개방적)地形(지형)을 가져 外部(외부)로부터 異民族(이민족)의 잦은 侵略(침략)을 받았다. 그리고 次例(차례)로 아카드()들의 아카드 帝國(제국)과 아무르()들의 바빌로니아 王國(왕국)支配(지배)()한다. 그러나 쐐기 文字(문자)[1]와 같은 수메르()文化(문화)繼續(계속) 傳承(전승)되어 發展(발전)했다.

수메르를 征服(정복)한 아카드()들은 비록 人類(인류) 最初(최초)帝國(제국)建設(건설)하였으나 他民族(타민족)()苛酷(가혹)租稅(조세)()寬容的(관용적)政策(정책)實施(실시)하였고 따라서 帝國(제국)()不滿(불만)으로 內亂(내란)이 잦았다. 아카드 帝國(제국)滅亡(멸망) 以後(이후) 메소포타미아를 再統一(재통일)한 바빌로니아는 地方(지방)總督(총독)派遣(파견)하고 代身(대신) 그 곳의 文化(문화)比較的(비교적) 宥化的(유화적)으로 受容(수용)하거나 認定(인정)하는 政策(정책)을 펼치며 長壽(장수)했고 함무라비()全盛期(전성기)를 이룩한다.

社會的(사회적)으로는 메소포타미아 神話(신화)라는 多神敎(다신교)를 믿었으며 神殿(신전)으로 지구라트建築(건축)했다. ()()子孫(자손)으로 看做(간주)되는 神權政治(신권정치)를 통해 祭政一致(제정일치) 社會(사회)構築(구축)했다. 또, 메소포타미아의 두 ()週期的(주기적)으로 氾濫(범람)하지 않고 洪水(홍수)不規則的(불규칙적)으로 發生(발생)하였으며 이에 더해 異民族(이민족)侵入(침입)도 잦은 탓에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은 死後(사후)世界(세계)存在(존재)보다 現世(현세)執着(집착)하는 傾向(경향)이 있었다. 이러한 傾向(경향)길가메시 敍事詩(서사시)에서 잘 드러난다.

階級(계급)은 크게 支配層(지배층)(神官(신관), 官吏(관리), 軍人(군인))과 被支配層(피지배층)(平民(평민), 奴隸(노예))의 두가지로 나뉘었다. 經濟的(경제적)으로는 商業(상업)手工業者(수공업자)登場(등장)하였고 交易(교역)發達(발달)했다. 文化的(문화적)으로는 占星術(점성술)이 발달했고 太陰曆(태음력)과 60進法(진법)使用(사용)했는데 前者(전자)陽曆(양력)影響(영향)을 주었으며 後者(후자)現代(현대)에서 時間(시간)計算(계산)할 때 使用(사용)된다.

最終的(최종적)으로 히타이트()滅亡(멸망)한다.

이집트 文明(문명)

埃及(애급)에는 紀元前(기원전) 3000()()부터 노모스라는 都市國家(도시국가)들이 나일() 流域(유역)에서 成立(성립)되기 始作(시작)했으며 漸次(점차) 征服(정복)戰爭(전쟁)()統一(통일)되어 王國(왕국)이 된다.

이집트 神話(신화)를 믿었으며 메소포타미아 文明(문명)과 마찬가지로 神權政治(신권정치)實施(실시)祭政一致(제정일치) 社會(사회)였다. 階級(계급)支配層(지배층)(祭司長(제사장), 官僚(관료))와 被支配層(피지배층)(百姓(백성))으로 區分(구분)되었다.

그러나 이집트의 경우 나일()氾濫(범람)週期的(주기적)이었고 閉鎖的(폐쇄적)地形(지형)保有(보유)하여 異民族(이민족)侵入(침입)防禦(방어)하기 容易(용이)했다. 이러한 까닭에 메소포타미아 文明(문명)과 비교하여 이집트 사람들은 現世(현세) 以外(이외)에도 來世(내세)를 생각할 餘裕(여유)가 있었으며 死後(사후)世界(세계)에 대한 觀念(관념)發達(발달)하게 되었다. () 靈魂(영혼)存在(존재)를 믿었으며 이러한 傾向(경향)은 이집트 特有(특유)葬禮(장례)風習(풍습)미라書籍(서적) 死者(사자)()에서 잘 드러난다.

또한 閉鎖的(폐쇄적)地形(지형)은 오랫동안 王國(왕국)維持(유지)되는 契機(계기)가 되었다. 太陽神(태양신) 라의 後孫(후손)으로 여겨진 파라오들에 ()()王國(왕국), ()王國(왕국), ()王國(왕국)으로 이어진다.[2]

文化的(문화적)으로는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를 建築(건축)했다. 自然(자연)스럽게 天文學(천문학)測量術(측량술), 幾何學(기하학)이 발달하게 되었다. 이집트 固有(고유)象形文字(상형문자)使用(사용)하였다. 이집트 文字(문자)種類(종류)는 크게 세 가지로 各各(각각) 히에로글리프(神聖文字(신성문자)), 히에라틱(神官文字(신관문자)), 데모틱(民衆(민중)文字(문자))이다. 미라의 保存(보존)()醫學(의학)發達(발달)하였고 以外(이외)에도 10進法(진법)使用(사용)했다.

인더스 文明(문명)

印度(인도)文明(문명)이라고도 ()한다.

黃河文明(황하문명)

中國(중국)文明(문명)이라고도 ()한다.

  1. 또는 楔形文字(설형문자)
  2. 埃及(애급)文明(문명)의 마지막 왕조는 프톨레마이오스 王朝(왕조)였으며 로마에 征服(정복)당한다. 클레오파트라율리우스 시저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카이사리온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