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韓에서 自稱하는 國家名稱으로, 大韓民國에서는 하나의 國家로서 認定하지 않지만 國際社會에서는 公認되는 便이다.
國家象徵
國名
大韓民國은 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國政權을 國家로 承認하지 않기 때문에 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國을 “韓半島의 北쪽 地域”라는 地理的意味의 “北韓”으로 부르고있다. 또한 줄여서 그냥 “北”이라고 부르기도 있다. 1980年代까지는 蔑稱으로 蘇聯의 꼭두각시 政權이라는 意味에서 “北傀”가 公的인 자리에도 使用되고 있었다.
日本에서는 朝鮮王朝以來韓民族과 韓民族의 나라에 對한 呼稱으로 “朝鮮”을 使用했기 때문에 韓半島를 “朝鮮半島”, 韓國語를 “朝鮮語”로 부른다. 日本政府는 大韓民國을 “韓半島에 있어서의 唯一한 合法政府”[1]로 認定하고 있기 때문에 日本의 行政機關(外務省等)이나 大衆媒體는 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國에 對해 實效支配地域의 名稱을 使用하여 “朝鮮半島의 北쪽 地域”을 意味하는 “北朝鮮”라고 부르고있다. 略稱은 北이 아닌 朝를 쓴다. 이 말을 줄여서 “北鮮”이라고 하는 事例도 있다. 이에 對해 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國政府의 在日本公民團體在日本朝鮮人總聯合會는 스스로를 韓民族의 正統國家라고 主張하는 立場에서 “北朝鮮”라는 것을 싫어해 “朝鮮”이라는 表記를 主張하고있다.
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國이라는 國號는 北韓을 建國한 政治人들의 一種의 妥協의 産物이라 할 수 있다. 于先 “朝鮮”과 “共和國”에 對해서는 빠른 合意가 이루어졌다. 朝鮮은 當代에도 韓國처럼 韓半島의 民族과 文化圈을 이르는 말로 通用되었고, 共和國亦是共産主義者들 立場에서 共和國 말고 다른 體制를 擇할 수 없으니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民主主義와 人民에 對해서는 意見이 갈렸다. 朴憲永은 1945年에 宣布된 國號인 朝鮮人民共和國을 選好했고, 中國共產黨에 몸담았던 北韓政治人들은 毛澤東의 新民主主義理論의 影響을 받아 朝鮮民主共和國을 選好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침내 金枓奉이 1946年에 人民과 民主主義 모두 넣은 “朝鮮人民民主主義共和國”을 提案했고 金日成과 蘇聯도 이에 同意하였다. 이 때 蘇聯軍軍政의 最高責任者는 所長이자 第25軍政治委員이었던 니콜라이 게오르기예비치 레베데프(Николай Георгиевич Лебедев)였는데, 金日成을 가르쳤던 人物로서, 레베데프가 남긴 會議錄에 따르면 1945年10月14日金日成이 처음 住民들 앞에 섰을 때 金日成을 그 자리에 데려온 人物도 레베데프였다. 레데베프는 金枓奉과 金日成의 考案에 對해 “民主主義人民共和國”이라고 부르면 좋겠다고 생각해 同意했다.
國旗
光復直後에는 太極旗를 國旗로 使用하였으나.
現行國旗는 1948年7月10日에 열린 最高人民會議第5次會議에서 太極旗를 廢止하면서 定한 國旗이다. 別稱으로 紅藍五角별旗, 藍紅色共和國旗라고도 부르며 大韓民國에서는 人共旗라고도 부른다. “人共”이라고 줄여 부르는 것은 若干의 蔑稱的語感도 섞여 있는데, 中國共産黨(또는 中國)에 反對하는 이들이 그 黨을 “中共”이라고 줄여서 부른다거나[3], 日本에서 日本共産黨을 反對하는 이들이 “日共”이라고 부르는 것과 비슷하다. 1980年代以前까지 大韓民國에서는 北傀旗라고도 불렀다.
大韓民國에서는 “國家保安法”에 따라 公共場所에서 使用하는 行爲가 嚴格히 禁止되어 있으며 國際運動行事, 演劇 및 映畫撮影等極히 例外的인 境遇에만 許容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