九鬼嘉隆은 16世紀 末期 日本의 武將이자 大名이다. 戰國時代의 有名한 水軍 武將이다.
그는 日本 志摩國(現在의 日本 三重縣 一帶)의 地方 豪族 九鬼氏에서 태어나 巨大한 水軍을 保有하고 있었다. 織田信長을 섬기며 九鬼氏 第11代 當主의 地位를 손에 넣었다. 1574年, 그는 水軍을 이끌고 織田信長을 도와 伊勢 長島의 一向一揆를 鎭壓했기 때문에 重用을 받았다. 1576年頃부터 織田信長의 指示로 鐵甲을 두른 너비 12m, 길이 21m의 大安宅船 여러 隻을 設計하여 建造했다. 1578年 木津川口戰鬪에서는 이 배 6隻으로 毛利氏 水軍을 擊破했다. 1582年 本能寺의 變으로 織田信長가 死亡하자, 羽柴秀吉은 以後 織田家으로부터 獨立했다. 1582年 以後 九鬼嘉隆은 漸次 羽柴秀吉(後의 豐臣秀吉)에게 歸屬되어 그를 奉職하게 되었다. 그는 織田信長, 豐臣秀吉에게 섬기면서 志摩國 全體를 支配하게 되었고, 鳥羽를 中心으로 三萬五千石의 領地를 받았다.
1592年 文祿의 役(壬辰倭亂)에서 그는 巨船 "日本丸"을 建造하여 이 배를 이끌며 朝鮮 攻擊의 水軍 先鋒隊의 一翼을 맡았다. 1600年 關原合戰에서 西軍에 加擔하여 敗戰 後 自害했다. 그의 아들 九鬼守隆이 東軍 側에 있었기 때문에, 九鬼氏는 東軍의 勝利 後에도 戰後에 걸쳐 存續할 수 있었다. 九鬼守隆가 九鬼氏의 家業을 繼承했으나, 後에 一族의 內紛으로 인해 九鬼氏의 勢力은 衰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