滿洲事變以後大日本帝國陸軍은 三年式機關銃이나 九二式重機關銃과 같은 空冷式氣壓作動方式의 重機關銃을 運用하고 있었다. 한便, 中國의 國民革命軍은 二四式重機關銃이나 비커스重機關銃, 브라우닝M1917重機關銃을 模造한 三十節式重機關銃等水冷式重機關銃을 運用하고 있었으며, 이러한 武器를 鹵獲한 日本陸軍에서도 그 持續射擊能力이 크게 評價받고 있었다.
그때 마침, 滿洲의 固定陣地나 要塞에 設置되는 隱顯式(昇降式) 機關銃塔에 裝着하기 위해 長時間射擊에 견딜 수 있는 重機關銃이 必要로 되고 있었다. 이에 따라, 비커스重機關銃을 基盤으로 設計된 航空機關銃인 八九式固定機關銃을 改造한 水冷式重機關銃이 試製品으로 製作되게 되었다.
元來設計가 많은 國家에서 使用되었던 비커스重機關銃이었기 때문에, 1938年12月에 試作型이 完成되었다. 이 試作型은 「試製九八式水冷式重機關銃」이라는 制式名稱을 附與받았다. 九八式이라는 이름은 神武天皇紀元, 卽 「皇紀」에서 由來했다. 西紀1938年은 皇紀2598年에 該當하다.
設計
가장 큰 特徵은 水冷式銃身을 갖추고 있다는 點이다. 이로 인해 旣存의 重機關銃보다 高速 및 長時間射擊에 견딜 수 있게 되었다. 冷却用通路이 銃身을 감싸고 있으며, 여기에 두 個의 蛇管가 連結되어 있다. 한 個의 蛇管은 射擊時發生하는 熱로 인해 生成된 水蒸氣를 冷却水槽로 案內해 물로 되돌리고, 다른 한 個의 蛇管은 冷却水를 供給하는 構造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水冷式機關銃의 共通된 短點인 銃自體가 무거워졌지만, 固定陣地用으로 使用되기 때문에 問題가 없다고 判斷되었다.
기타 裝備는 可能한 限九二式重機關銃과 共通된 裝備를 使用하도록 設計되어 있으며, 彈藥은 九二式重機關銃과 同一한 九二式普通實包를 使用하며, 銃身과 三脚臺도 九二式重機關銃과 同型의 것을 使用했다.
運用
完成된 이 銃은 1940年11月에 核心的인 隱顯式銃塔이 採擇되지 않아, 小倉陸軍造兵廠에서 1,506挺만 製造되었다. 거의 모든 것이 日本-蘇聯國境地域과 滿洲國-蘇聯國境地域의 國境守備部隊나 固定陣地에 配置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