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國病(英語: British Malaise)는 第二次世界大戰後, 英國에서 보인 停滯現象.
具體的으로는 工業生産이나 輸出力의 減退, 慢性的인 인플레이션과 國際收支의 惡化, 그에 따른 파운드의 下落과 같은 經濟의 停滯와, 이에 對處할 수 없는 英國社會特有의 硬直性을 總稱한다.
이 原因으로는, 社會保障制度의 充實 및 完全雇傭의 實現으로 勞動力이 不足하고, 게다가 勞動組合의 賃金引上要求가 企業經營을 壓迫, 最終的으로는 商品價格으로 轉換되어, 物價上昇과 勞動者의 賃金引上再要求라는 惡循環을 招待한 것이 于先 꼽힌다. 한便, 勞動費用의 上昇은 資本의 國外流出을 促進하고, 인플레이션 抑制, 國際收支改善을 爲한 緊縮財政과 金融緊縮은, 國內投資의 減少, 景氣沈滯를 가져왔다. 게다가 商品輸出의 國際競爭力의 低下는, 貿易收支의 赤字가 되어, 파운드의 下落과 直結되었다.
保守黨, 勞動黨을 不問하고 歷代內閣이 緊縮政策, 賃金·物价凍結, 파운드切下에 依한 輸出促進을 圖謀해도 事態는 全혀 改善되지 않았다. 이러한 經濟의 正體는 傳統的인 社會階級의 非流動性, 화이트 칼라와 블루 칼라로 대표되는 極端的인 職能噴火, 保守的인 經營思想에서 오는 合理化 망설임 等, 英國固有의 社會的要因이 背後에 있고, 이것들이 복 合的으로 作用하여, 이런 事態를 招來했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1967年 蘇格蘭 앞바다에서 發見된 北海油田의 生産이 1975年부터 始作되어, 1978年에는 國內需要의 2分의 1에 該當하는 4500萬 t를 生産, 英國의 國際收支改善에 크게 寄與했을 뿐 區, 油田 開發을 爲한 巨額投資家景氣를 刺戟하여, 英國經濟의 칸플루劑가 되었다.
게다가, 1979年에 首相로 就任한 마거릿 대처는 11年間의 任期 中에 徹底한 緊縮 政策, 政府 規制의 大幅 緩和 等의 經濟 活性化를 推進하여, 經濟 成長率을 4% 前後로 상승시킨 結果, '英國病'에서의 脫皮를 이루었다 그런 느낌을 주었다.
그러나 1989年에 들어서면서 인플레이션 高進, 파운드 弱勢에 다시 휩쓸려, '英國病' 재현의 憂慮가 고개를 들게 되었다. 對處 辭任 後를 받은 메이저 政權도 世界 同時 不況의 影響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1992年에는 歐洲通貨制度(EMS)에서 離脫을 강요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