事大主義(사대주의)

223.104.148.77 (討論(토론))님의 2024()5()31()())13()57() () (새 文書: == 槪要 == Toadyism 또는 Flunkyism 事大主義는 큰 나라(大)를 섬기는(事) 思想을 意味 한다. 事大主義와 慕華主義를 合쳐 事大慕華라고도 한다. == 意見 == === 擁護論 === 事實 이 用語는 西歐의 植民主義 프레임에 東아시아 外交關係를 꿰어 맞추면서 "한 國家가 自律性을 抛棄하고 强한 國家에 服從하거나 盲目的으로 追從하려는 思想 또는 外交方針"을 槪念化하기 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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槪要(개요)

Toadyism 또는 Flunkyism

事大主義(사대주의)는 큰 나라(())를 섬기는(()) 思想(사상)意味(의미) 한다. 事大主義(사대주의)慕華(모화)主義(주의)()事大(사대)慕華(모화)라고도 한다.

意見(의견)

擁護論(옹호론)

事實(사실)用語(용어)西歐(서구)植民主義(식민주의) 프레임에 ()아시아 外交(외교)關係(관계)를 꿰어 맞추면서 "한 國家(국가)自律性(자율성)抛棄(포기)하고 ()國家(국가)服從(복종)하거나 盲目的(맹목적)으로 追從(추종)하려는 思想(사상) 또는 外交(외교)方針(방침)"을 槪念化(개념화)하기 위하여 創案(창안)되었다.

國際(국제) 關係(관계)에서는 언제나 相對的(상대적)으로 ()한 나라가 ()한 나라의 눈치를 봐왔다. 이건 靑銅器(청동기) 時代(시대)古代(고대) 國家(국가)登場(등장)以來(이래)現在(현재)까지 東西洋(동서양) 어느 나라를 莫論(막론)하고 共通(공통)으로 있어온 普遍的(보편적)인 일이었다.

中國(중국)秦始皇(진시황) 以來(이래)로 유라시아 大陸(대륙) ()쪽인 ()아시아에서 獨步的(독보적)巨大(거대)權力(권력)이었다. 前近代(전근대) 時期(시기) 中國(중국)()()()이란 名稱(명칭)에 걸맞게 軍事的(군사적), 文化的(문화적), 經濟的(경제적)으로 타 ()아시아 國家(국가)보다 앞서 있었기 때문에, 이들과 交流(교류)를 하면서 文化(문화)를 발전시키는 게 利得(이득)이었지, 쓸데없이 對立(대립)關係(관계)()必要(필요)가 없었다. 다른 ()아시아 國家(국가)歷史上(역사상) 中國(중국) 大陸(대륙)國家(국가)들과 對等(대등)關係(관계)를 맺거나 比等比等(비등비등)하게 影響力(영향력)行使(행사)했던 때는 中國(중국)分裂(분열)()를 맞았을 때를 除外(제외)하고는 없었다. 韓國(한국)()例示(예시)로 들 때, 中國(중국) 大陸(대륙)國家(국가)韓半島(한반도)征服(정복)할 만한 軍事力(군사력)을 가진 境遇(경우)()나라와 ()나라, ()나라를 除外(제외)하고는 거의 없었지만, 當時(당시) ()아시아에서 中國(중국) 大陸(대륙) 國家(국가)와의 交流(교류)傳統的(전통적)으로 事大(사대)形式(형식)으로만 可能(가능)했으며, 形式的(형식적)으로 臣下(신하)自處(자처)했을 때만 可能(가능)한 것이지 同等(동등)關係(관계)에서의 外交(외교)는 거의 不可能(불가능)했다.

이러한 意味(의미)에서 "事大(사대)"는 外交(외교)의 한 形態(형태)活用(활용)되었다. 한족과 맞짱떴던 無數(무수)異民族(이민족) 國家(국가)들이 一時的(일시적)으로 中國(중국)征服(정복)했다가도 오히려 大部分(대부분) 한족에게 同化(동화)되어 밀려났지만, 韓半島(한반도) 國家(국가)들은 맞짱떠서 中國(중국)征服(정복)歷史(역사)는 없더라도 "事大(사대)"의 形式(형식)으로 固有(고유)文化(문화)正體性(정체성)維持(유지)하면서 現在(현재)까지 命脈(명맥)을 이어올 수 있었다.

아울러 文化(문화), 制度的(제도적)側面(측면)에서도 近代(근대) 以前(이전)까지만 해도 中國(중국)當時(당시) ()아시아 文明(문명)中心地(중심지)였기 때문에 저 큰 ()님이 實際(실제)學識(학식)도 높고, ()物件(물건)도 많고, 저렇게 適當(적당)脾胃(비위) 맞춰주면 그럭저럭 너그럽게 베풀기도 하는 便()이니 이걸 利用(이용)한 것이라 보면 된다. 中國(중국)은 이미 ()나라 때부터 장건과 半草(반초)開拓(개척)緋緞(비단)길로 中央(중앙)아시아를 비롯한 西洋(서양)()交易(교역)을 했으며, ()나라에 이르러서는 首都(수도) 長安(장안)國際都市(국제도시)()性格(성격)을 가지게 될 程度(정도)로 다양한 文明(문명)直接的(직접적)으로 만나는 國家(국가)였다. 게다가 中國(중국)名目(명목)() 事大(사대)()朝貢(조공)要求(요구)하기는 했으나, 天子(천자)體面(체면)이라는 名目(명목)()朝貢(조공)() 以上(이상)物件(물건)을 하사했고, 이는 朝鮮(조선)에 있어서는 利得(이득)보는 장사였다. 오죽하면, 朝鮮(조선)使臣(사신)()나라를 訪問(방문)하자 '朝鮮(조선)使臣(사신)은 너무 자주 오는 것 아니냐?'며 使節團(사절단) 交流(교류)를 좀 줄이자고 付託(부탁)하던 境遇(경우)도 있었다. 勿論(물론) ()을 베푼다는 儒敎(유교) 思想(사상)影響力(영향력)에서 相對的(상대적)으로 더 자유로웠던 나라들은 一般的(일반적)으로 朝貢(조공)에서 損害(손해)를 보지 않고 利益(이익)을 보았다. 事情(사정)이 이렇다보니 現實的(현실적)立場(입장)에서 ()하게 지내는 것이 當然(당연)하다.

當時(당시) 中國(중국)()아시아의 秩序(질서)에서 마치 現在(현재)美國(미국)과 같은 位相(위상)을 가지고 있었다고 보면 된다. 옛날같은 時代(시대) 狀況(상황)에서 별다른 意味(의미)도 없이 中國(중국)敵對(적대)關係(관계)持續(지속)해 왔다면 先進(선진)文物(문물)導入(도입)할 수 있는 經路(경로)가 막히고 國家(국가) 發展(발전)이 사그라들어 結局(결국)滿洲(만주)처럼 中國(중국)一介(일개) 地方(지방)으로 轉落(전락)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推測(추측)도 있다. 事大(사대)라는건 그냥 形式的(형식적)이고 名分(명분)()인 치레였을 뿐이다. 眞心(진심)으로 따르는 것이라고 보기 힘든 것은 羅唐戰爭(나당전쟁)()로 알 수 있다. 羅唐戰爭(나당전쟁)新羅(신라)()나라 領域(영역)을 먼저 攻擊(공격)하면서 始作(시작)되었다.

地政學的(지정학적)으로도 日本(일본)처럼 孤立(고립)된 섬나라라면 상관없겠지만, 韓半島(한반도)境遇(경우) 몽골高原(고원) 等地(등지)에서 꼬리를 물고 發興(발흥)해온 世界(세계) 最强(최강)戰鬪(전투) 民族(민족)들과 直接的(직접적)戰爭(전쟁)을 반드시 ()해야 했다. 이들 北方(북방) 遊牧民族(유목민족)의 힘은 中國(중국) 程度(정도) 되니까 그나마 버틸 수 있었던 것이고 그 마저도 몽골이나 滿洲(만주)(여진)()에게는 本土(본토)가 털렸었다. 이런 獨步的(독보적)强大國(강대국) 中國(중국)이나, ()은 이런 强大國(강대국) 中國(중국)조차도 떡失神(실신)시키던 몽골()이나 滿洲族(만주족)과 같은 戰鬪(전투)民族(민족)들이 韓半島(한반도)侵攻(침공)해온다는 것은 韓民族(한민족) 國家(국가)滅亡(멸망)이나 다름없어 事大(사대)必須的(필수적)戰略(전략)이었다. 實際(실제)로도 世界史(세계사)를 보면 어떤 地域(지역)强大國(강대국)을 박살낸 遊牧民族(유목민족)周邊(주변) 地域(지역)들도 죄다 焦土化(초토화)를 시켜버리는 境遇(경우)가 많았다. 中國(중국)을 깨부술 수 있는 能力(능력)을 지녔음을 立證(입증)()나라나 ()나라만 봐도 리즈 時節(시절) 때에 軍事的(군사적)으로 ()하지는 않았다. 또한 戰力(전력)으로 보면 騎兵(기병)當時(당시) 戰車(전차), 裝甲車(장갑차), 험비나 마찬가지라 그런 걸 수만 () ()數十萬(수십만) ()까지 가지고 있었다고 볼 수 있는 遊牧民族(유목민족)들과 그런 遊牧民族(유목민족)들을 買收(매수)하여 離間(이간)질, 분열시키거나 古典(고전)시킬 수 있는 農耕(농경) 大帝國(대제국)들은 ()코 만만한 相對(상대)가 아니었다. 歷史(역사)에서 로마 帝國(제국)事例(사례)만 봐도 로마 같은 優秀(우수)文物(문물), 巨大(거대)規模(규모)를 가진 農耕(농경) 帝國(제국)조차 正常的(정상적)으로 어느 程度(정도) 돌아가는 農耕(농경) 帝國(제국)을 무너뜨리기가 쉽지 않음을 보여준다. 世界史的(세계사적)으로도 周邊(주변)帝國(제국)들에게 形式(형식)() 事大(사대)를 하는 民族(민족)들이나 나라는 많았다.

오히려 韓半島(한반도)로서는 차라리 어느 程度(정도) 價値觀(가치관)共有(공유)할 수 있는 農耕(농경) 文化圈(문화권)中國(중국)連帶(연대)하는 것이 餘震(여진)이나 몽골 같은 遊牧(유목)+牧畜(목축) 民族(민족)들의 掠奪(약탈)戰爭(전쟁)對處(대처)하는 데 훨씬 나은 選擇(선택)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中世(중세) 後半(후반) 以後(이후)로 갑툭튀하여 ()아시아 () 海岸(해안)을 휩쓸었던 倭寇(왜구)()한 대처도 그렇고. 現實的(현실적)으로 거란이나 몽골의 侵略(침략)에서 ()나라가 高麗(고려)를 도와준 일은 없었지만, ()나라 같은 境遇(경우) 이만주 項目(항목)에서 보듯 女眞族(여진족)共同(공동)으로 對處(대처)境遇(경우)도 있었고 朝鮮(조선)倭寇(왜구)討伐(토벌)했다는 名目(명목)으로 使臣(사신)派遣(파견)하고 ()나라에서 이를 致賀(치하)해 하사한 境遇(경우)도 있었다.

바다 위에서 大陸(대륙)과 떨어졌다는 地理(지리) 條件(조건) 德澤(덕택)强大國(강대국)侵略(침략)에서 자유로웠던 섬나라 日本(일본)은 이러한 歷史(역사)를 비틀어 만든 事大主義(사대주의)라는 槪念(개념)으로 韓國(한국)歷史(역사)貶下(폄하)했다. 日帝(일제)强占期(강점기) 日本(일본)造船(조선)社學(사학)()들은 中國(중국)朝鮮(조선) 사이의 不均衡(불균형)力學(역학)關係(관계)朝鮮(조선) ()後期(후기) 朝鮮(조선)이 보였던 찌질한 모습들을 들추어 이를 韓國(한국)() 全般(전반)特徵(특징)으로 聯關(연관)시켰고, 이를 朝鮮(조선)總督府(총독부) 官吏(관리)들에게 朝鮮(조선)統治(통치)指針書(지침서)提供(제공)하기도 하였다. 近代(근대) 韓國(한국)民俗學(민속학)相當(상당)學術(학술) 成果(성과)를 쌓은 것으로 評價(평가)받는 代表(대표) 植民史(식민사)學者(학자)() 다카하시 盜壘(도루)는 3.1 運動(운동)마저도 中國(중국) 事大主義(사대주의)에서 美國(미국) 事大主義(사대주의)轉換(전환)한 것이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그들이 朝鮮(조선)蔑視(멸시)前提(전제)로 삼은 日本(일본)의 자주 獨立(독립)實際(실제)로는 地政學(지정학) 與件(여건)優位(우위)에 말미암은 것임을 考慮(고려)하지 않았다. 韓國(한국)獨立運動(독립운동) 陣營(진영)舊韓末(구한말)에 더 以上(이상) 中國(중국)最高(최고)가 아님을 깨닫고, 내셔널리즘의 成長(성장)과 함께 日帝(일제)干涉(간섭)植民(식민)統治(통치)에 맞서 自主性(자주성)强調(강조)하다보니 自主性(자주성)과 맞지 않던 過去(과거) 韓半島(한반도) 國家(국가)事大(사대)外勢(외세) 依存(의존)으로 貶下(폄하)하고 非難(비난)했다.

事大主義(사대주의)에서 價値(가치)()盜賊(도적)搜査(수사)除外(제외)하고 추려 보면, ()()國家(국가)同盟(동맹) 關係(관계)維持(유지)하고, 앞선 文物(문물)을 받아들이려는 努力(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事大主義(사대주의)는 예나 只今(지금)이나 世界(세계) 各國(각국)國力(국력)懸隔(현격)差異(차이)가 있고, 超强大國(초강대국)世界(세계) 秩序(질서)를 다스리는 國際(국제) 現實(현실)에서 모든 國家(국가)生存(생존)發展(발전)을 위해서라면 利用(이용)해야 할 戰略(전략)인 셈이다.

또한 朝鮮(조선)()들이 ()나라를 따르고 讚揚(찬양)한 것은 그저 그 나라를 讚揚(찬양)한 게 아니라, 當代(당대) 中國(중국)文明(문명)이 이미 朝鮮(조선)을 앞서갔기 때문이다. 中國(중국)先進(선진) 文物(문물) ()을 다시 朝鮮(조선)中國(중국)을 통해 받아들일 수 있었고, 그렇게 하는 것이 朝鮮(조선)利得(이득)이 되었기 때문이다. 世宗大王(세종대왕) 때 만든 七政算(칠정산)() 中國(중국)授時曆(수시력)中國(중국)을 통해 들어온 아랍의 回回曆(회회력)을 바탕으로 만든 것이며, 訓民正音(훈민정음) 또한 中國(중국)言語學(언어학) 書籍(서적)音韻(음운) 關聯(관련) 書籍(서적)硏究(연구)하여 創製(창제)된 것이다.

()中華(중화)主義(주의)()中華(중화) 文物(문물)이 낡은 것으로 여겨지는 現代(현대)에는 一見(일견) 답답해 보일 수 있겠지만, 事實(사실) 現代(현대) 韓國人(한국인)들도 그 때 當時(당시)와 같은 狀況(상황)이라면 當代(당대) 朝鮮(조선)()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萬若(만약) 3() 世界大戰(세계대전)勃發(발발)하여 中國(중국)과 러시아가 美國(미국), 日本(일본)西歐圈(서구권)을 무너뜨리고 地球(지구)()에 오직 韓國(한국)만이 唯一(유일)民主(민주) 國家(국가)로 남았다고 假定(가정)해 보자. 살아남은 韓國人(한국인)들이 獨裁(독재) 國家(국가)中國(중국), 러시아와 다르게 自身(자신)들은 西歐式(서구식) 民主主義(민주주의)繼承(계승)唯一(유일)國家(국가)라며 自負心(자부심)을 보이는 게 異常(이상)할까? 이와 비슷하게, 西洋(서양)에서도 로마 帝國(제국)文物(문물)을 받아들인 유럽 民族(민족)들이 로마 滅亡(멸망) ()에는 너도 나도 로마의 後繼(후계)()自處(자처)했다.

또한 事大主義(사대주의)關聯(관련)으로 朝鮮(조선)非難(비난)하는 이들이 看過(간과)하는것이 後期(후기) 朝鮮(조선)()나라를 마냥 稱頌(칭송)한것만은 絶對(절대) 아니라는것이다. 代表的(대표적)으로 ()나라의 萬曆帝(만력제)()朝鮮(조선)萬東廟(만동묘)를 지으며 祭祀(제사) 지내준것과는 別個(별개)朝鮮(조선) 亦是(역시) 萬曆帝(만력제)暗君(암군)인건 認知(인지)하고 이()()해서는 매우 否定的(부정적)이었는데 當場(당장) 朝鮮王朝實錄(조선왕조실록)에서는 천계제는 怨望(원망)할 수 없으나 萬曆帝(만력제)政事(정사)를 돌보지 않은점은 絶對(절대)로 본받지 말아야한다고 警告(경고)하는 記錄(기록)이 있다.("사리에 어두운 賃金(임금)怨望(원망)하지 않는 ()이니, 天啓(천계)皇帝(황제)怨望(원망)할 수 없는 賃金(임금)該當(해당)됩니다. 그러나 萬曆(만력)皇帝(황제)初年(초년)靈媒(영매)하고 호걸스럽던 임금이었는데도 四十(사십) () 동안 王位(왕위)에 있으면서 臣僚(신료)들을 ()()한 적이 없었습니다. 이것은 境界(경계)로 삼아야 할 일입니다.")

또한 朝鮮(조선) 朝廷(조정)에서는 ()나라가 ()했다는 消息(소식)을 듣고 나라가 ()했음에도 自決(자결)忠臣(충신)이 없는것에 ()皇帝(황제)가 임금답지 못해 志操(지조)節槪(절개)있는자들이 떠나가서 그렇다고 ()나라를 디스하는 記錄(기록)存在(존재)한다.

批判論(비판론)

事大主義(사대주의)時代(시대)變化(변화)에도 不拘(불구)하고 그 흐름을 타지 못하는 데 寄與(기여)했다.

()()交替期(교체기) 以後(이후)에는 ()나라를 正統(정통)으로 認定(인정)하지 않으면서 朝鮮(조선)이 곧 ()나라의 精神(정신)繼承(계승)했다는 精神(정신)勝利(승리)法的(법적)()中華思想(중화사상)擡頭(대두)되었다. 事大主義(사대주의)는 큰 나라를 盲目的(맹목적)으로 따르는 것이지만, ()나라가 오랑캐(()나라)에게 滅亡(멸망)하면서 朝鮮(조선)이 섬겨야 할 '큰 나라'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 ()中華思想(중화사상)情緖(정서)()()交替(교체) 以後(이후) 韓國(한국), 日本(일본), 베트남에서 共通的(공통적)으로 나타난다. 朝鮮(조선)()中華(중화)라는 槪念(개념)王朝(왕조)滅亡(멸망)했지만 中華(중화) 文化(문화)如前(여전)中國(중국) 땅에 存在(존재)하고 있고, 精神的(정신적)으로는 오랑캐의 나라인 ()보다 大國(대국)이니 中和(중화)如前(여전)히 섬기는 우리가 바로 事實(사실)상의 작은 中華(중화)라는 槪念(개념)이기 때문이다. ()中華(중화)主義(주의)自國(자국)優越主義(우월주의)() 面貌(면모)를 보이면서도 基本的(기본적)으로는 中國(중국)()事大主義(사대주의)에서 派生(파생)된 것이다.

() '小人輩(소인배) 나라, 오랑캐 나라, 精神的(정신적)으로 작은 나라인 ()精神的(정신적)으로 偉大(위대)對人(대인)배의 나라 ()中華(중화) 朝鮮(조선)事大(사대)하는 것이 儒敎(유교)原理(원리)에 따르면 옳은 것이지만 ()나라 오랑캐들은 無識(무식)하면서 힘만 센 野蠻人(야만인)들이므로 一旦(일단) 겉으로만 ()을 섬기는 척한다'라는 意味(의미)가 된다. 當時(당시)思想(사상)으로 보면, ()나라는 겉보기에 크기만 클 뿐 ()大國(대국)이 아니었고 수많은 오랑캐 ()것들 () 하나일 뿐이었다. 當然(당연)現實的(현실적)으로는 朝鮮(조선)의 20()가 넘는 人口(인구)를 갖고 있고 壓倒的(압도적)으로 莫强(막강)國力(국력)을 자랑하더라도, 現實(현실)否定(부정)하고자 하는 儒學者(유학자)들의 觀念(관념) ()에서는 '작은 나라'인 ()事大(사대)對象(대상)일 수는 없는 것이었다. 결론적으로 () 建國(건국) 以後(이후)에도 朝鮮(조선)은 '事大主義(사대주의)論理(논리)'를 ()코 버리지 않았다. 다만 스스로를 師大(사대)를 하는 나라에서 받는 나라로 規定(규정)했을 뿐이다. 實際(실제)로 그 사대라는 것을 받아본 적은 없고 오히려 거짓으로라도 오랑캐 나라에 事大(사대)하는 우스운 地境(지경)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이와 같이 韓半島(한반도)境遇(경우) 歷史的(역사적)으로 丙子胡亂(병자호란) 以後(이후) 朝鮮(조선) 後期(후기)까지 事大主義(사대주의)()中華(중화)主義(주의)變化(변화)하면서 ()나라와의 交易(교역), 交流(교류)妨害(방해)하였다.

朝鮮(조선)事大主義(사대주의)()中華(중화)主義(주의)變質(변질)된 것은 朝鮮(조선)滅亡(멸망)加速(가속)시켰다고 볼 수도 있는데 그나마 ()나라나 ()나라를 통해 어느 程度(정도)外部(외부)文物(문물)을 받아들이고 있던 以前(이전)에 비해 後期(후기)에 들어서는 中國(중국)除外(제외)外部(외부)와의 交流(교류)가 거의 斷絶(단절)되었고, ()나라를 ()制限的(제한적)文物(문물)만 받아들이다가 나중에 ()나라가 建國(건국)되면서는 ()()나라 그 時節(시절)基準(기준)固定(고정)돼버려서, 청을 ()發展(발전)된 신문물을 받아들이자는 史上(사상)(北學派(북학파))이 賣國奴(매국노) 取扱(취급)을 받아야 했다. 朝鮮(조선)爲政者(위정자)들은 뒤떨어진 朝鮮(조선)을 발전시킬 方案(방안)은 내놓지 않으면서 하는 짓이라는 것은 죽은 ()나라 皇帝(황제)祭祀(제사)를 지내는 것 뿐이었고, 이것은 1937()(年度(연도)錯誤(착오)가 아니다!) 까지도 이어지고 있었다.

念頭(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여기서 말하는 ()나라 皇帝(황제)萬曆帝(만력제)로, 事大主義(사대주의)立脚(입각)祭祀(제사)를 지낸 것이 아니다. 1930年代(연대)가 어떤 時代(시대)인가. 日帝(일제)植民地(식민지) 政策(정책)日帝(일제) 自體(자체)中日戰爭(중일전쟁)世界大戰(세계대전)火魔(화마)로 뛰어들며 露骨的(노골적)인 파시즘의 影響(영향)을 받은 民族(민족)抹殺(말살)政策(정책)이란 至極(지극)暴壓的(폭압적)方向(방향)으로 더 惡化(악화)되고, 그나마 남아있던 獨立運動(독립운동)()들은 ()中華民國(중화민국)에서 장제스의 國府軍(국부군) 支援(지원)아래 싸우고 있던 時節(시절)이다. 이 時節(시절)萬東廟(만동묘)에서 祭祀(제사)를 지낸다는 건 單純(단순)傳統(전통)發露(발로)일 뿐만 아니라 至極(지극)微妙(미묘)하고도 尖銳(첨예)政治的(정치적) 메세지가 담긴 行爲(행위)解釋(해석)하는게 더 자연스럽다.

작은 것이 큰 것을 섬긴다는 '事大(사대)'라는 槪念(개념)一旦(일단) 儒敎(유교)基本(기본) 觀念(관념) () 하나였다는 ()理解(이해)必要(필요)가 있다. '子息(자식)父母(부모)를 섬기고, 弟子(제자)는 스승을 섬기고, 臣下(신하)는 임금을 섬기고, 지어미는 지아비를 섬기고, 나이 어린 사람은 나이 많은 사람을 섬기고, 작은 나라는 큰 나라를 섬겨야 한다'는 생각은 朝鮮(조선)時代(시대) 儒敎的(유교적) 觀點(관점)에서 보면 너무도 當然(당연)한 것이었다. 따지고 보면 ()()라는 것도 작은 것(臣下(신하), 子息(자식))() 큰 것(왕, 父母(부모))을 섬긴다는 事大(사대)論理(논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이다. 때문에 '큰 나라에 事大(사대)를 하지 않는 것'은 不孝(불효), 不忠(불충)과 다름 없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