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七四南北共同聲明"의 두 版 사이의 差異

(새 文書: '''七四南北共同聲明''', '''7·4 共同聲明'''으로도 알려져 있다. 1972年 7月 4日 發表된 南北共同宣言을 말한다. 共同聲明 發表에 앞서 兩側은 房門을 交換했다. 1972年 5月 2日부터 5日까지 서울特別市(특별시)大韓民國(대한민국) 中央情報部(중앙정보부) 長官 ()()()平壤(평양)을 訪問했고, 같은 해 5月 29日부터 6月 1日까지 ()()() 第2副總理가 ()()() 長官을 代身하여 서울을 訪問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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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七四南北共同聲明''', '''7·4 共同聲明'''으로도 알려져 있다. 1972年 7月 4日 發表된 南北共同宣言을 말한다. 共同聲明 發表에 앞서 兩側은 房門을 交換했다. 1972年 5月 2日부터 5日까지 [[서울特別市]]의 [[大韓民國 中央情報部]] 長官 [[李厚洛]]이 [[平壤]]을 訪問했고, 같은 해 5月 29日부터 6月 1日까지 [[朴成哲]] 第2副總理가 [[金英柱]] 長官을 代身하여 서울을 訪問했다. 7月 4日 平壤과 서울에서 同時에 南北共同聲明이 發表되었다.
'''七四南北共同聲明''', '''7·4 共同聲明'''으로도 알려져 있다. 1972年 7月 4日 發表된 南北共同宣言을 말한다. 共同聲明 發表에 앞서 兩側은 房門을 交換했다. 1972年 5月 2日부터 5日까지 [[서울特別市]]의 [[大韓民國 中央情報部]] 長官 [[李厚洛]]이 [[平壤]]을 訪問했고, 같은 해 5月 29日부터 6月 1日까지 [[朴成哲]] 第2副總理가 [[金英柱]] 長官을 代身하여 서울을 訪問했다. 7月 4日 平壤과 서울에서 同時에 南北共同聲明이 發表되었다.
== 正文 ==
== 正文 ==
最近 平壤과 서울에서 南北 關係를 改善하며 갈라진 祖國을 統一하는 問題를 協議하기 위한 會談이 있었다.
서울의 이후락 中央情報部長이 1972年 5月 2日부터 5月 5日까지 平壤을 訪問하여 平壤의 金英柱 組織指導部長과 會談을 進行하였으며, 金英柱 部長을 代身한 朴成哲 第2部首相이 1972年 5月 29日부터 6月 1日까지 서울을 訪問하여 이후락 部長과 會談을 進行하였다.
이 會談들에서 雙方은 祖國의 平和的 統一을 하루빨리 가져와야 한다는 共通된 念願을 안고 虛心坦懷하게 意見을 交換하였으며 서로의 理解를 增進시키는대서 큰 成果를 거두었다.
이 過程에서 雙方은 오랫동안 서로 만나보지 못한 結果로 생긴 南北 사이의 誤解와 不信을 풀고 緊張의 高調를 緩和시키며 나아가서 祖國統一을 促進시키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問題들에 完全한 見解의 一致를 보았다.
# 雙方은 다음과 같은 祖國統一原則들에 合意를 보았다.
* 첫째, 統一은 外勢에 依存하거나 外勢의 干涉을 받음이 없이 自主的으로 解決하여야 한다.
* 둘째, 統一은 서로 相對方을 反對하는 武力行事에 依據하지 않고 平和的 方法으로 實現하여야 한다.
셋째, 思想과 理念, 制度의 差異를 超越하여 于先 하나의 民族으로서 民族的 大團結을 圖謀하여야 한다.

2024年6月10日(月)18時52分 版

七四南北共同聲明(칠사남북공동성명), 7·4 共同聲明(공동성명)으로도 알려져 있다. 1972() 7() 4() 發表(발표)南北(남북)共同宣言(공동선언)을 말한다. 共同聲明(공동성명) 發表(발표)에 앞서 兩側(양측)房門(방문)交換(교환)했다. 1972() 5() 2()부터 5()까지 서울特別市(특별시)大韓民國(대한민국) 中央情報部(중앙정보부) 長官(장관) ()()()平壤(평양)訪問(방문)했고, 같은 해 5() 29()부터 6() 1()까지 ()()() ()2副總理(부총리)()()() 長官(장관)代身(대신)하여 서울을 訪問(방문)했다. 7() 4() 平壤(평양)과 서울에서 同時(동시)南北共同聲明(남북공동성명)發表(발표)되었다.

正文(정문)

最近(최근) 平壤(평양)과 서울에서 南北(남북) 關係(관계)改善(개선)하며 갈라진 祖國(조국)統一(통일)하는 問題(문제)協議(협의)하기 위한 會談(회담)이 있었다.

서울의 이후락 中央情報部(중앙정보부)()이 1972() 5() 2()부터 5() 5()까지 平壤(평양)訪問(방문)하여 平壤(평양)()()() 組織(조직)指導部長(지도부장)會談(회담)進行(진행)하였으며, ()()() 部長(부장)代身(대신)()()() ()2部首(부수)()이 1972() 5() 29()부터 6() 1()까지 서울을 訪問(방문)하여 이후락 部長(부장)會談(회담)進行(진행)하였다.

會談(회담)들에서 雙方(쌍방)祖國(조국)平和的(평화적) 統一(통일)을 하루빨리 가져와야 한다는 共通(공통)念願(염원)을 안고 虛心坦懷(허심탄회)하게 意見(의견)交換(교환)하였으며 서로의 理解(이해)增進(증진)시키는대서 큰 成果(성과)를 거두었다. 이 過程(과정)에서 雙方(쌍방)은 오랫동안 서로 만나보지 못한 結果(결과)로 생긴 南北(남북) 사이의 誤解(오해)不信(불신)을 풀고 緊張(긴장)高調(고조)緩和(완화)시키며 나아가서 祖國(조국)統一(통일)促進(촉진)시키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問題(문제)들에 完全(완전)見解(견해)一致(일치)를 보았다.

  1. 雙方(쌍방)은 다음과 같은 祖國(조국)統一(통일)原則(원칙)들에 合意(합의)를 보았다.
  • 첫째, 統一(통일)外勢(외세)依存(의존)하거나 外勢(외세)干涉(간섭)을 받음이 없이 自主的(자주적)으로 解決(해결)하여야 한다.
  • 둘째, 統一(통일)은 서로 相對方(상대방)反對(반대)하는 武力(무력)行事(행사)依據(의거)하지 않고 平和的(평화적) 方法(방법)으로 實現(실현)하여야 한다.

셋째, 思想(사상)理念(이념), 制度(제도)差異(차이)超越(초월)하여 于先(우선) 하나의 民族(민족)으로서 民族的(민족적) 大團結(대단결)圖謀(도모)하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