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文書: '''淡海三船'''은 8世紀 日本(일본)의 前 皇族 出身의 貴族(귀족)이자 文人(문인)이다. 壬申(임신)()으로 ()()天皇(천황)에게 敗하고 쫓겨나 自決한 ()()皇子(황자)의 曾孫이다. 그는 漢風諡號(中國式 諡號)가 日本에 傳해지기 以前의 初代부터 第41代까지의 天皇에게 漢風諡號를 制定하여 追贈하였다. == 經歷 == 722年에 태어났다. 皇族으로서의 이름은 御船王이었다. 天平 年間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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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젋었을 때는 僧侶였던 經歷도 있었으며, [[新羅]]의 僧侶 [[元曉]]가 지은 [[金剛三昧經論]]을 읽고 感歎해 779年에 日本을 訪問한 新羅 使臣團의 判官 薩仲業이 元曉의 孫子라는 事實을 알고 그에게 漢詩를 지어주기도 하는 等, 外典이나 漢詩에도 뛰어났다. 그의 漢詩 5首가 [[經國集]]에 실려 있으며, 現存하는 日本 最古의 漢詩集 [[懷風藻]]의 撰者로 보는 설도 있다. 또한 日本書紀의 註釋書인 釋日本紀에 引用된 私記에는 神武天皇에서 元正天皇에 이르는 歷代 天皇(弘文天皇과 文武天皇을 除外)의 漢風諡號를 모두 撰進한 事實이 記錄되어 있다. 또한 779年에 唐나라에서 渡來한 僧侶 [[鑑眞]]의 傳記인 唐大和上東征傳을 著述하였다. 續日本紀 前半部 編輯도 三船가 關與했다고 여겨진다.
 젋었을 때는 僧侶였던 經歷도 있었으며, [[新羅]]의 僧侶 [[元曉]]가 지은 [[金剛三昧經論]]을 읽고 感歎해 779年에 日本을 訪問한 新羅 使臣團의 判官 薩仲業이 元曉의 孫子라는 事實을 알고 그에게 漢詩를 지어주기도 하는 等, 外典이나 漢詩에도 뛰어났다. 그의 漢詩 5首가 [[經國集]]에 실려 있으며, 現存하는 日本 最古의 漢詩集 [[懷風藻]]의 撰者로 보는 설도 있다. 또한 日本書紀의 註釋書인 釋日本紀에 引用된 私記에는 神武天皇에서 元正天皇에 이르는 歷代 天皇(弘文天皇과 文武天皇을 除外)의 漢風諡號를 모두 撰進한 事實이 記錄되어 있다. 또한 779年에 唐나라에서 渡來한 僧侶 [[鑑眞]]의 傳記인 唐大和上東征傳을 著述하였다. 續日本紀 前半部 編輯도 三船가 關與했다고 여겨진다.


[[分類:日本의  貴族]]
[[分類:日本의  公家]]

2026年 2月 10日 (火) 10:59 基準 最新版

()()()()은 8世紀(세기) 日本(일본)() 皇族(황족) 出身(출신)貴族(귀족)이자 文人(문인)이다. 壬申(임신)()으로 ()()天皇(천황)에게 ()하고 쫓겨나 自決(자결)()()皇子(황자)曾孫(증손)이다.

그는 ()()諡號(시호)(中國(중국)() 諡號(시호))가 日本(일본)()해지기 以前(이전)初代(초대)부터 ()41()까지의 天皇(천황)에게 ()()諡號(시호)制定(제정)하여 追贈(추증)하였다.

經歷(경력)[編輯]

722()에 태어났다. 皇族(황족)으로서의 이름은 ()()()이었다. 天平(천평) 年間(연간)()나라 僧侶(승려) ()()을 따라 出家(출가)하여 王號(왕호)를 버리고 法名(법명)으로 ()()()하였다.

751() 三十(삼십)() ()諸王(제왕)들에게 眞人(진인) ()賜姓(사성)하며 身分(신분) ()()가 이루어졌을 때, 勅命(칙명)에 따라 還俗(환속)하여 ()()()의 이름으로 돌아간 뒤, ()()()眞人(진인)()을 부여받아 ()()으로 降下(강하)되어 ()()眞人(진인)()()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 ()()歷任(역임)했으나, 756() 朝廷(조정)誹謗(비방)했다는 罪目(죄목)()()() ()()()()()와 함께 ()()()禁錮(금고)되었다가 곧 放免(방면)되었다.

764()8()()()()任命(임명)되어 다시 地方官(지방관)으로 轉任(전임)되었다. 같은 해 9()()()()(), () ()()()()()()이 일어났다. ()()은 이때 ()()使()로서 近江(근강)() ()()滯留(체류) ()이었으며, ()()使()判官(판관) ()()()()와 함께 兵馬(병마)調達(조달)하기 위해 ()()()派遣(파견)使者(사자)를 붙잡아 拘束(구속)하였다. 以後(이후) 그는 ()()()를 불태워 ()()()叛亂軍(반란군)東山(동산)()進軍(진군)하는 길을 遮斷(차단)했다. 이 功勞(공로)로 그는 ()五位(오위)()陞敍(승서)하고 ()三等(삼등)敍勳(서훈)을 받고, 近江(근강)()任命(임명)되었다.

771() 刑部(형부)大輔(대보)京官(경관)從事(종사)하며, ()大學(대학)(), 文章(문장)博士(박사) ()歷任(역임)하여 780() ()()()()敍位(서위)되었다.

784()刑部(형부)()으로 轉任(전임)되었으나, 이듬해 7()17() 卒去(졸거)하였다. 享年(향년) 64(). 最終(최종) 官位(관위)刑部(형부)()()()()()()()()()였다.

人物(인물)[編輯]

()日本紀(일본기)()()에 따르면, 그는 聰明(총명)하고 銳敏(예민)性品(성품)이었고 많은 ()讀破(독파)하였으며 ()著述(저술)하는 것을 즐겼다고 ()한다. 當時(당시) 石上(석상)()()와 함께 "文人(문인)의 으뜸"(文人の首)으로 불렸다고 石上(석상)()()()()에는 ()하고 있다.

젋었을 때는 僧侶(승려)였던 經歷(경력)도 있었으며, 新羅(신라)僧侶(승려) 元曉(원효)가 지은 金剛三昧經論(금강삼매경론)을 읽고 感歎(감탄)해 779()日本(일본)訪問(방문)新羅(신라) 使臣(사신)()判官(판관) ()()()元曉(원효)孫子(손자)라는 事實(사실)을 알고 그에게 漢詩(한시)를 지어주기도 하는 (), 外典(외전)이나 漢詩(한시)에도 뛰어났다. 그의 漢詩(한시) 5()經國(경국)()에 실려 있으며, 現存(현존)하는 日本(일본) 最古(최고)漢詩(한시)() ()()()撰者(찬자)로 보는 설도 있다. 또한 日本書紀(일본서기)註釋書(주석서)()日本紀(일본기)引用(인용)私記(사기)에는 神武(신무)天皇(천황)에서 元正(원정)天皇(천황)에 이르는 歷代(역대) 天皇(천황)(()()天皇(천황)文武(문무)天皇(천황)除外(제외))의 ()()諡號(시호)를 모두 撰進(찬진)事實(사실)記錄(기록)되어 있다. 또한 779()()나라에서 渡來(도래)僧侶(승려) ()()傳記(전기)()()()上東(상동)()()著述(저술)하였다. ()日本紀(일본기) 前半部(전반부) 編輯(편집)()()關與(관여)했다고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