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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뵈멘 및 메렌 保護領'''은 [[第二次世界大戰]] 中 [[獨逸國|獨逸]]이 [[체코슬로바키아]]를 滅亡한 後 그 西部에 設立한 傀儡政權이다. 保護領은 1939年 獨逸 總統 [[아돌프 히틀러]]가 親히 設立을 宣言했으며, 獨逸이 戰爭 末期에 降伏하면서 消滅했다. 保護領의 人口는 체코系와 獨逸系가 主를 이루었다. 뵈멘 및 메렌 保護國이라고도 한다.
'''뵈멘 및 메렌 保護領'''은 [[第二次世界大戰]] 中 [[獨逸國|獨逸]]이 [[체코슬로바키아]]를 滅亡한 後 그 西部에 設立한 傀儡政權이다. 保護領은 1939年 獨逸 總統 [[아돌프 히틀러]]가 親히 設立을 宣言했으며, 獨逸이 戰爭 末期에 降伏하면서 消滅했다. 保護領의 人口는 체코系와 獨逸系가 主를 이루었다. 뵈멘 및 메렌 保護國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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保護領의 設立은 獨逸 歷史上 前例 없는 擧動였기 때문에, 獨逸 當局은 체코人들의 獨逸에 對한 協力을 促進하기 위해 保護領에 "表面上의 獨立"을 承認하는 方針을 取했다. 그러나 保護領에는 大統領 警護隊의 役割을 擔當하는 "政府軍"{{*|체코語: Vládní vojsko, 獨逸語: Regierungstruppen}}과 獨自的인 郵便 制度가 있었음에도 不拘하고, 實權은 獨逸 當局의 손에 있었다. 에밀 大統領은 保護領에 派遣된 全權委員, 卽 뵈멘 및 메렌 國務保護官(Reichsprotektor in Böhmen und Mähren)으로부터 獨逸 政府의 "指導"를 받아 統治하도록 暗示받았다.
保護領의 設立은 獨逸 歷史上 前例 없는 擧動였기 때문에, 獨逸 當局은 체코人들의 獨逸에 對한 協力을 促進하기 위해 保護領에 "表面上의 獨立"을 承認하는 方針을 取했다. 그러나 保護領에는 大統領 警護隊의 役割을 擔當하는 "政府軍"{{*|체코語: Vládní vojsko, 獨逸語: Regierungstruppen}}과 獨自的인 郵便 制度가 있었음에도 不拘하고, 實權은 獨逸 當局의 손에 있었다. 에밀 大統領은 保護領에 派遣된 全權委員, 卽 뵈멘 및 메렌 國務保護官(Reichsprotektor in Böhmen und Mähren)으로부터 獨逸 政府의 "指導"를 받아 統治하도록 暗示받았다.
國際法 및 체코슬로바키아法의 見地에서, 이 所謂 "建國"은 不法 倂合을 僞裝한 形態에 不過하며, 체코슬로바키아의 合法 政府는 英國 [[倫敦]]에 據點을 둔 亡命政府( 後 에 聯合國이 이 亡命政府의 合法性을 承認)였으며, [[에드바르트 베네시]] 大統領이 이끌고 있었다. 當時 獨逸 政府의 公式 立場은 保護領 設立이 1939年3月15日 체코슬로바키아 政府와 獨逸 政府가 共同으로 發表한 聲明에 根據한 合法的인 平和的 占領이라는 것이었다. 獨逸 占領 當局은 체코슬로바키아라는 國家는 人爲的으로 만들어진 國家이며, 체코 地域을 獨逸 民族의 "[[生存圈]]"에서 分離시킨 것으로, 實際로는 獨立的으로 安定的으로 存在할 수 없으며, 따라서 유럽의 平和를 威脅하는 溫床이라고 標榜했다.
國際法 및 체코슬로바키아法의 見地에서, 이 所謂 "建國"은 不法 倂合을 僞裝한 形態에 不過하며, 체코슬로바키아의 合法 政府는 英國 [[倫敦]]에 據點을 둔 亡命政府(1941年 에 聯合國이 이 亡命政府의 合法性을 承認)였으며, [[에드바르트 베네시]] 大統領이 이끌고 있었다. 當時 獨逸 政府의 公式 立場은 保護領 設立이 1939年3月15日 체코슬로바키아 政府와 獨逸 政府가 共同으로 發表한 聲明에 根據한 合法的인 平和的 占領이라는 것이었다. 獨逸 占領 當局은 체코슬로바키아라는 國家는 人爲的으로 만들어진 國家이며, 체코 地域을 獨逸 民族의 "[[生存圈]]"에서 分離시킨 것으로, 實際로는 獨立的으로 安定的으로 存在할 수 없으며, 따라서 유럽의 平和를 威脅하는 溫床이라고 標榜했다.
1940年9月16日, 保護領의 領土는 獨逸 關稅 地域에 編入되었으며, 外交 政策은 完全히 獨逸에 의해 掌握되었다. 保護領은 獨逸 政府에 "特使"{{*|체코語: vyslanec, 獨逸語: Gesandter}}라는 公式 職銜을 가진 代表者 한 名을 派遣했을 뿐이었으나, 그 特使는 外交使節이 아니라고 明記되어 있었다.
1940年9月16日, 保護領의 領土는 獨逸 關稅 地域에 編入되었으며, 外交 政策은 完全히 獨逸에 의해 掌握되었다. 保護領은 獨逸 政府에 "特使"{{*|체코語: vyslanec, 獨逸語: Gesandter}}라는 公式 職銜을 가진 代表者 한 名을 派遣했을 뿐이었으나, 그 特使는 外交使節이 아니라고 明記되어 있었다.
2025年 10月 28日 (火) 12:03 基準 最新版
뵈멘 및 메렌 保護領은 第二次世界大戰中獨逸이 체코슬로바키아를 滅亡한 後 그 西部에 設立한 傀儡政權이다. 保護領은 1939年獨逸總統아돌프 히틀러가 親히 設立을 宣言했으며, 獨逸이 戰爭末期에 降伏하면서 消滅했다. 保護領의 人口는 체코系와 獨逸系가 主를 이루었다. 뵈멘 및 메렌 保護國이라고도 한다.
1938年뮌헨會談을 통해 英佛은 獨伊兩國과 協定을 締結하고, 체코슬로바키아 代表의 參加 없이 체코슬로바키아 西部領土인 주데텐란트地方을 獨逸에 割讓하기로 決定했다. 또한 체코슬로바키아 中部領土인 체신실레시아地方의 一部를 波蘭에 割讓했다. 뮌헨會談에서 洪牙利와 波蘭도 체코슬로바키아에 自國과의 係爭地域割讓을 要求했기 때문에, 체코슬로바키아 國內의 民族運動은 激化되었다. 1939年3月14日, 슬로바키아 地域에서 獨逸은 슬로바키아人을 煽動하여 傀儡政權 "슬로바키아國"을 樹立했다. 3月15日, 獨逸은 체코슬로바키아의 殘存領土를 占領했다. 獨逸政府는 이 介入行爲에 대해 체코슬로바키아가 混亂狀態에 빠져 民族境界線을 따라 分裂되고 있다고 主張하며, 獨逸軍이 該當地域의 秩序回復에 努力하고 있다고 辯明하며 介入을 正當化했다. 체코슬로바키아共和國政府와 그 新任大統領에밀 하하는 獨逸, 洪牙利, 그리고 分離主義政治人을 代表하는 國內反對勢力으로부터의 壓力에 直面해 있었다. 3月15日, 에밀은 獨逸總統 히틀러와의 會見後聲明을 發表하고, 現在의 情勢를 勘案하여 체코 人民의 運命을 獨逸이 決定하는 데 同意한다고 表明했다. 히틀러는 에밀의 聲明을 受容하고, 체코슬로바키아의 運命은 獨逸이 決定하며 獨逸은 체코系民族이 管理하는 自治的인 保護領을 체코 人民[1]에게 주겠다고 宣言했다. 에밀은 같은 날 保護領의 大統領으로 任命되었다.
1939年3月16日, 獨逸總統 히틀러는 過去보헤미아國王과 神聖로마皇帝가 居城했던 프라하城에서 正式的으로 『뵈멘 및 메렌 保護領設立法令』(Výnos o zřízení Protektorátu Čechy a Morava)을 頒布하고, "뵈멘 및 메렌 保護領"의 設立을 宣布했다. 이 名稱은 該當地域이 獨逸語로 傳統的으로 불려온 "뵈멘"과 "메렌"을 蹈襲한 것이다. 이 措置는 獨逸自身이 1938年9月30日에 調印한 뮌헨協定에 實質的으로 違反하는 것이었다.
이 設立法令은 保護領에 自治權을 承認함으로써 形式上自治資格을 附與했다. 그러나 그 自治權의 行使는 獨逸의 政治的, 軍事的, 經濟的需要에 符合하는 境遇에 限해 許容되었다. 따라서 自治權은 名目上의 것에 不過했으며, 獨逸은 이를 制限하고 特定分野에서는 完全히 剝奪할 수도 있었다. 保護領內獨逸人과 現地人에게는 서로 다른 法律이 適用되었다. 獨逸系住民에게는 獨逸法이 適用되는 反面, 그 外住民들은 保護領臣民(obyvatelé Protektorátu)의 法的地位를 附與받아 保護領政府와 保護領法律에 의해 統治되었다. 獨逸政府의 計劃에 따르면, 체코人들은 獨逸政府의 指導思想이었던 國民社會主義의 人種理論이 "劣等한 人間"으로 看做한 波蘭人, 우크라이나人, 露西亞人처럼 殘殺되지 않고 徐徐히 게르만化를 받아들이도록 豫定되어 있었다. 獨逸政府는 때때로 保護領을 自國一部로 看做했다.
保護領의 設立은 獨逸歷史上前例 없는 擧動였기 때문에, 獨逸當局은 체코人들의 獨逸에 對한 協力을 促進하기 위해 保護領에 "表面上의 獨立"을 承認하는 方針을 取했다. 그러나 保護領에는 大統領警護隊의 役割을 擔當하는 "政府軍"[2]과 獨自的인 郵便制度가 있었음에도 不拘하고, 實權은 獨逸當局의 손에 있었다. 에밀 大統領은 保護領에 派遣된 全權委員, 卽 뵈멘 및 메렌 國務保護官(Reichsprotektor in Böhmen und Mähren)으로부터 獨逸政府의 "指導"를 받아 統治하도록 暗示받았다.
國際法 및 체코슬로바키아法의 見地에서, 이 所謂 "建國"은 不法倂合을 僞裝한 形態에 不過하며, 체코슬로바키아의 合法政府는 英國倫敦에 據點을 둔 亡命政府(1941年에 聯合國이 이 亡命政府의 合法性을 承認)였으며, 에드바르트 베네시大統領이 이끌고 있었다. 當時獨逸政府의 公式立場은 保護領設立이 1939年3月15日 체코슬로바키아 政府와 獨逸政府가 共同으로 發表한 聲明에 根據한 合法的인 平和的占領이라는 것이었다. 獨逸占領當局은 체코슬로바키아라는 國家는 人爲的으로 만들어진 國家이며, 체코 地域을 獨逸民族의 "生存圈"에서 分離시킨 것으로, 實際로는 獨立的으로 安定的으로 存在할 수 없으며, 따라서 유럽의 平和를 威脅하는 溫床이라고 標榜했다.
1940年9月16日, 保護領의 領土는 獨逸關稅地域에 編入되었으며, 外交政策은 完全히 獨逸에 의해 掌握되었다. 保護領은 獨逸政府에 "特使"[3]라는 公式職銜을 가진 代表者 한 名을 派遣했을 뿐이었으나, 그 特使는 外交使節이 아니라고 明記되어 있었다.
第二次世界大戰中, 保護領은 豐富한 經驗을 가진 체코人勞動力과 發達된 工業을 保有하고 있어 獨逸의 戰爭經濟에 莫大한 寄與를 強要받았다. 保護領이 英國을 據點으로 하는 聯合軍爆擊機의 攻擊範圍 밖에 位置했기 때문에, 뵈멘 메렌 地域의 經濟는 終戰까지 거의 妨害받지 않고 稼動되었다. 保護領行政府는 뵈멘 메렌 地域에서 유대人, 롬人等民族에 對한 大量虐殺行爲의 各段階에 깊이 關與했다.
1945年5月9日 프라하蜂起가 일어났으며, 直後蘇聯軍의 프라하攻勢가 일어나면서 체코 地域에 駐屯하던 獨逸國防軍이 一掃되었다. 1945年5月11日 프라하가 陷落되고, 大統領 에밀 하하와 保護領의 高官들이 逮捕되면서 뵈멘 메렌 保護領은 滅亡했으며, 그 領土는 체코슬로바키아 亡命政府에 의해 接收되었다.
保護領의 存在는 獨逸이 聯合國에 降伏함으로써 終末을 맞이했다. 戰後一部保護領官僚들은 國家에 對한 反逆罪 및 侵略者에 對한 協力罪로 起訴되었으나, 當時 체코 社會의 一般的인 見解에 따르면 保護領은 完全히 敵國과 共謀하는 對敵協力政權으로 認識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 起訴는 漸次 잠잠해졌다. 뵈멘 메렌 保護領은 第二次世界大戰前後를 통틀어 獨逸에게 占領된 期間이 가장 긴 他國領土였다.
保護領의 國名은 뵈멘(보헤미아)과 메렌(모라비아)라고 불리지만, 그 領土는 傳統的으로 보헤미아와 모라비아라는 두 이름이 가리키는 地域에 더해 실레시아 地域의 작은 一部도 包含되어 있다.
獨逸의 旣定計劃에 따르면, 뵈멘 메렌 地域은 獨逸이 戰爭에서 勝利한 後完全히 獨逸國에 倂合될 豫定이었다(大게르만國計劃). 獨逸은 뵈멘 메렌을 長期間形式上의 獨立國家로 存續시킬 意圖가 없었기 때문에, Protektorat는 "保護領" 또는 "保護國"으로 飜譯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