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文書: '''桓溫'''은 東晉 十六國 時代의 ()나라의 名將이자 權臣이다. 字는 元子이다. 譙國 龍亢(現在 中國 安徽省 懷遠縣) 出身으로 譙國桓氏 一門의 代表 人物이다. 宣城內史 ()()의 長男이다. 桓溫은 風貌가 堂堂하고 豪快하며, 文武兩道에 뛰어나고 英略에 卓越했다. 어릴 때 當時 皇帝의 누이인 ()()公主(공주)를 맞이하여 駙馬都尉에 맡게 되었고,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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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年 10月 8日 (水) 12:34 基準 最新版

()()東晉(동진) 十六國(십육국) 時代(시대)()나라名將(명장)이자 權臣(권신)이다. ()元子(원자)이다. ()() ()()(現在(현재) 中國(중국) 安徽省(안휘성) ()()()) 出身(출신)으로 ()()()() 一門(일문)代表(대표) 人物(인물)이다.

宣城(선성)內史(내사) ()()長男(장남)이다. ()()風貌(풍모)堂堂(당당)하고 豪快(호쾌)하며, 文武(문무)()()에 뛰어나고 英略(영략)卓越(탁월)했다. 어릴 때 當時(당시) 皇帝(황제)의 누이인 ()()公主(공주)를 맞이하여 駙馬都尉(부마도위)에 맡게 되었고, 아버지의 ()()縣男(현남)이라는 男爵(남작) 爵位(작위)承襲(승습)했다. 343(), 征西(정서)將軍(장군) ()()이 이끄는 北伐(북벌)參與(참여)하여 그 功績(공적)으로 徐州(서주)刺史(자사)으로 昇進(승진)하였다. 345(), 安西(안서)將軍(장군)荊州(형주)都督(도독)任命(임명)되어 長江(장강) 上流(상류) 地域(지역)兵權(병권)掌握(장악)했다. 長江(장강)을 거슬러 올라가 成漢(성한)滅亡(멸망)시키고 ()()回復(회복)했으며, 그 名聲(명성)은 크게 높아졌다. ()大司馬(대사마)官職(관직)에 오르며 ()郡公(군공)으로 ()해졌다. 權力(권력)掌握(장악)期間(기간) 동안 農桑(농상)()()하고, 官吏(관리)統治(통치)肅正(숙정)하며, 豪族(호족)에 의한 土地(토지) 收奪(수탈)抑制(억제)하고, ()()(戶籍(호적) 整理(정리), 行政區域(행정구역) 再編(재편))을 實施(실시)하며, 民間疾苦(민간질고)重視(중시)하고, 敎育(교육)改善(개선)하였다.

그는 또한 세 次例(차례)에 걸쳐 北伐(북벌)指揮(지휘)하여 短期間(단기간)에 옛 都城(도성) 洛陽(낙양)奪還(탈환)했다. 朝政(조정)管掌(관장)하여 廢立(폐립)左之右之(좌지우지)程度(정도)權勢(권세)를 휘둘렀다. 나아가 帝位(제위)奪取(탈취)하려는 意圖(의도)까지 품었으나, 最終的(최종적)北伐(북벌)에서 大敗(대패)를 당해 威信(위신)을 잃었고, 朝廷(조정) ()의 두 () 士族(사족)()()()()勢力(세력)制約(제약)을 받아 그 所望(소망)은 이루지 못했다. 죽기 몇 달 ()에는 九錫(구석)을 받고자 했으나, 謝安(사안) ()口實(구실)을 대며 미루었기에 生前(생전)實現(실현)하지 못했다. 373(), ()()病歿(병몰)하여 享年(향년) 62()였다. () 朝廷(조정)은 그를 追贈(추증)하여 丞相(승상)으로 삼고 諡號(시호)()()()으로 하였다.

後날(훗날) 그의 아들인 ()()一時的(일시적)으로 ()帝位(제위)簒奪(찬탈)하여 ()(()())를 建國(건국)하게 되자, ()()은 아버지인 ()()皇帝(황제)追尊(추존)하고, 諡號(시호)에는 아버지의 死後(사후) ()에서 賜與(사여)한 "()()()"의 "()()"를 使用(사용)하여 ()()皇帝(황제)()하였다. 그러나 ()()建國(건국)()短命(단명)했고, 正統(정통) 王朝(왕조)認定(인정)되진 않는다.

()나라의 儒學者(유학자) ()(), 三國時代(삼국시대) ()나라의 政治家(정치가) ()()後裔(후예)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