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文書: thumb|right 英國(영국)이 直接支配했던 時期의 印度의 呼稱. 1877年 1月 1日부터 英國(영국)女王(여왕)이 <印度女帝>를 稱하고, 이때부터 印度(인도)()()()()의 獨立(1947年)에 이르는 期間에 該當한다. 英領(영령)印度(인도)라고도 하지만, 緬甸(면전)가 印度의 1조로 여겨졌던 時期도 있기 때문에, 印度帝國이라고 부르는 便이 옳다. 18世紀後半以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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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國]]이 直接支配했던 時期의 印度의 呼稱. 1877 年 1月 1 日부터 [[빅토리아 女王|英國女王]]이 < 印度女帝> 를 稱하고, 이때부터 [[ 印度]] [[ 巴基斯坦]] 의 獨立(1947年)에 이르는 期間에 該當한다. [[英領印度]]라고도 하지만, [[緬甸]]가 印度의 1조로 여겨졌던 時期도 있기 때문에, 印度帝國이라고 부르는 便이 옳다.
[[英國]]이 直接支配했던 時期의 [[ 印度]] 의 呼稱. 1877 年1月1 日부터 [[빅토리아 女王|英國女王]]이 '''" 印度女帝"''' 를 稱하고, 이때부터 印度 및 巴基斯坦의 獨立(1947年)에 이르는 期間에 該當한다. [[英領印度]]라고도 하지만, [[緬甸]]가 印度의 1조로 여겨졌던 時期도 있기 때문에, 印度帝國이라고 부르는 便이 옳다.


18世紀後半以後, [[英國東印度會社]]는 印度各地로 그 勢力을 擴大하고, [[마이소르 戰爭]], [[마라타 戰爭]], [[시크 戰爭]]等을 통해 印度의 重要據點의 占領支配體制를 굳혔다. 反面, 이러한 英國의 侵略에 對한 [[印度人]]의 不滿도 높아져, 1857年에는 印度大起義이 일어났고, 그 때문에 英國本國은 起義終結後, 印度의 支配權을 東印度會社에서 印度代身으로 옮겨, 直接的인 [[植民地]]支配에 나 서  다.
18世紀後半以後, [[英國東印度會社]]는 印度各地로 그 勢力을 擴大하고, [[마이소르 戰爭]], [[마라타 戰爭]], [[시크 戰爭]]等을 통해 印度의 重要據點의 占領支配體制를 굳혔다. 反面, 이러한 英國의 侵略에 對한 [[印度人]]의 不滿도 높아져, 1857年에는 印度大起義이 일어났고, 그 때문에 英國本國은 起義終結後, 印度의 支配權을 東印度會社에서 印度代身으로 옮겨, 直接的인 [[植民地]]支配에 나 다.


 印度의 舊支配層인 [[封建領主]]를 懷柔하고, 村落共同體에 依한 自治制度나 [[카스트 制度]]를 保存하면서, 巧妙한 分轄支配를 實施했다. 經濟面에서도 그 植民地化가 進行된 結果, 印度는 "英國王冠에 빛나는 가장 큰 寶石"이라고 불릴 程度의 利益을 낳았다.
 印度의 舊支配層인 [[封建領主]]를 懷柔하고, 村落共同體에 依한 自治制度나 [[카스트 制度]]를 保存하면서, 巧妙한 分轄支配를 實施했다. 經濟面에서도 그 植民地化가 進行된 結果, 印度는 '''"英國王冠에 빛나는 가장 큰 寶石"''' 이라고 불릴 程度의 利益을 낳았다.


 그러나 [[民族資本]]의 成長과 함께 印度人의 獨立運動도 激化되어, [[第二次世界大戰]] 때는 英國政府도 印度의 獨立을 約束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리고 前後 1947年 8月 15日에는 印度聯邦과 巴基斯坦의 2自治領{{*|現 印度共和國과 巴基斯坦回敎共和國}}이 成立되어, 印度帝國은 그 終末을 알렸다.
 그러나 [[民族資本]]의 成長과 함께 印度人의 獨立運動도 激化되어, [[第二次世界大戰]] 때는 英國政府도 印度의 獨立을 約束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리고 前後 1947年 8月 15日에는 印度聯邦과 [[ 巴基斯坦]] 의 2自治領{{*|現 印度共和國 (1950年1月26日 成立) 과 巴基斯坦回敎共和國 (1956年3月23日 成立)}}이 成立되어, 印度帝國은 그 終末을 알렸다.


[[分類:英國의 植民地]]
[[分類:英國의 植民地]]
[[分類:印度의 歷史]]
[[分類:巴基斯坦의 歷史]]
[[分類:緬甸의 歷史]]
[[分類:孟加拉國의 歷史]]

2024年 9月 18日 (水) 16:28 基準 最新版

英國(영국)直接(직접)支配(지배)했던 時期(시기)印度(인도)呼稱(호칭). 1877()1()1()부터 英國(영국)女王(여왕)"印度(인도)女帝(여제)"()하고, 이때부터 印度(인도)()()()()獨立(독립)(1947())에 이르는 期間(기간)該當(해당)한다. 英領(영령)印度(인도)라고도 하지만, 緬甸(면전)印度(인도)의 1조로 여겨졌던 時期(시기)도 있기 때문에, 印度帝國(인도제국)이라고 부르는 便()이 옳다.

18世紀(세기)後半(후반)以後(이후), 英國東印度會社(영국동인도회사)印度(인도)各地(각지)로 그 勢力(세력)擴大(확대)하고, 마이소르 戰爭(전쟁), 마라타 戰爭(전쟁), 시크 戰爭(전쟁)()을 통해 印度(인도)重要(중요)據點(거점)占領(점령)支配(지배)體制(체제)를 굳혔다. 反面(반면), 이러한 英國(영국)侵略(침략)()印度人(인도인)不滿(불만)도 높아져, 1857()에는 印度(인도)大起(대기)()이 일어났고, 그 때문에 英國(영국)本國(본국)起義(기의)終結(종결)(), 印度(인도)支配權(지배권)東印度會社(동인도회사)에서 印度(인도)代身(대신)으로 옮겨, 直接的(직접적)植民地(식민지)支配(지배)에 나섰다.

印度(인도)()支配層(지배층)封建(봉건)領主(영주)懷柔(회유)하고, 村落共同體(촌락공동체)()自治制度(자치제도)카스트 制度(제도)保存(보존)하면서, 巧妙(교묘)分轄(분할)支配(지배)實施(실시)했다. 經濟面(경제면)에서도 그 植民地(식민지)()進行(진행)結果(결과), 印度(인도)"英國(영국)王冠(왕관)에 빛나는 가장 큰 寶石(보석)"이라고 불릴 程度(정도)利益(이익)을 낳았다.

그러나 民族資本(민족자본)成長(성장)과 함께 印度人(인도인)獨立運動(독립운동)激化(격화)되어, 第二次世界大戰(제이차세계대전) 때는 英國(영국)政府(정부)印度(인도)獨立(독립)約束(약속)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리고 前後(전후) 1947() 8() 15()에는 印度聯邦(인도연방)()()()()의 2自治領(자치령)[1]成立(성립)되어, 印度帝國(인도제국)은 그 終末(종말)을 알렸다.

  1. () 印度(인도)共和國(공화국) (1950()1()26() 成立(성립))과 ()()()()回敎(회교)共和國(공화국) (1956()3()23() 成立(성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