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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용 서울중앙지방검찰청 特殊部 1部長檢査의 歲月號 7時間 再搜査 結果 實際 그날 靑瓦臺에 들어간 것은 정윤회가 아니라 그의 夫人 최순실이었다. 2014年 12月 28日, 美洲 言論社 선데이저널에서 정윤회 國政壟斷 '政權 後半 최순실이 반드시 政局의 核 될 것'이라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豫想하고 있었다. 아마도 정윤회 國政介入 疑惑에서 剛하게 냄새를 맡은 듯하다. 선데이저널은 2016年 8月 18日 1038號에 실린 미르文化財團-K스포츠財團 1,000億원臺 募金... 靑瓦臺 안종범 首席 둘러싼 미스터리 追跡 記事를 통해서 최순실과 미르財團의 聯關 疑惑을 最初로 報道했다고 主張한다. 선데이저널이 最初로 報道하고 한겨레는 9月에 自身들이 報道한 記事를 無斷으로 引用해서 報道했다는 것이다. <미르-케이스포츠 재단="" 최순실="" 관련="" 보도="">遺憾. 최순실 介入 疑惑 지난 8月 本誌에서 單獨 報道한 記事 허나, 事件의 發端은 2016年 7月 末 朝鮮日報가 먼저 미르財團件을 터뜨렸고, 以後 한겨레가 崔順實의 存在를 밝힌 것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그리고 그런 渦中에 "최순실 祕密 通路로 靑瓦臺 出入, 警備들도 알고 있다"는 報道까지 나왔다. 2014年 國家情報院에서도 秘線 實勢는 최순실이라는 說이 퍼지고 있다는 內容, 헬스 트레이너로 靑瓦臺 行政官에 任命된 윤전추가 崔 氏의 트레이너였다는 內容 等이 담긴 報告書가 作成되었고, 2016年 初에는 靑瓦臺가 設立에 介入한 미르와 K스포츠財團에 數百億臺 出捐金을 내라는 要求에 財界 不滿이 相當하다는 報告書가 作成되었다. 하지만 이 報告書들은 當時 國精院 第8局長이었던 추명호에 依해 默殺되었고, 오히려 이러한 情報를 蒐集한 職員들을 地方으로 左遷시켰다는 事實이 後날 밝혀진다. 國精院, 國政壟斷 2年 前 '최순실 諜報' 170件 뭉갰다 아무튼 바야흐로 始作은 2016年 9月 20日 한겨레가 미르財團과 K스포츠財團 理事에 就任한 최순실이란 疑問의 人物을 報道하면서 始作되었다.[5] 이를 契機로 韓國에서 가장 强力한 利益集團 中 하나인 全國經濟人聯合會가 800億 원에 達하는 巨額을 特定 財團에 無償으로 寄附한 것과 그 財團이 設立된 過程이 드물게 一瀉千里로 이루어진 것에 言論이 注目하면서 최순실을 國政監査 證人으로 採擇해야 한다는 輿論이 일었다. 이때부터 스멀스멀 올라오는 巨大한 權力 非理의 냄새에 政治權 뿐만 아니라 一般 國民들 또한 조금씩 注目하기 始作했다. 하지만 當時 李貞鉉 새누리당 代表가 10月 國政監査 期間 途中 이레 동안 非公開 斷食까지 不辭하며 최순실을 國監 證人으로 採擇하는 것을 막으면서 事件은 여기서 一段落될 것으로 보였으나 證人 採擇 與否와는 別個로 言論社들은 이미 한겨레의 9月 20日子 報道 以後 최순실이 자주 往來한 獨逸 地域을 積極 取材하고 있었다. 그러던 中 10月 中盤 JTBC에서 大統領 演說文도 최순실에게 새어나간 것이 아니냐는 疑惑을 報道하는데, 이에 國會에 出席해 있던 이원종 靑瓦臺 祕書室長은 '그런 일은 封建時代에도 있을 수 없는 日'이라고 全面 否認하는 한便, 10月 24日에는 國會를 訪問한 朴槿惠 大統領이 갑자기 直接 10次 改憲 論議를 하며 話題를 돌려 政局 轉換을 試圖했다. 當時 JTBC 뉴스룸과 같은 時間帶에 放送되었던 MBC 뉴스데스크 記事, 한겨레 記事, 한겨레 記事2 그러나 겨우 12時間도 흐르지 않은 그날 저녁, 그야말로 나라를 뒤흔들 뉴스가 電波를 탄다. 바로 JTBC가 최순실 태블릿 PC 入手 事實을 밝히며 드레스덴 演說文을 包含한 大統領의 '말씀資料'와 對北 接觸 狀況 等 重大한 國家 機密이 최순실에게 事前 流出되었음을 暴露한 것이다. 최순실 PC 파일 入手..大統領 演說 前 演說文 받았다 大統領 公式 發言하기 사흘 前에 받아보기도 民間人인 최순실이 大統領이 演說하기 前에 미리 演說文을 받아서 自己 입맛에 맞게 고쳐 보내면 大統領은 그것을 그대로 演說했다는 事實에 大衆들에겐 衝擊을 주며 輿論이 들끓게 되었다. 非專門家인 一般人들도 絶對로 事前에 公開되지 말아야 할 資料가 個人 태블릿에게 아무렇지 않게 돌아다녔다는 事實은 到底히 納得할 수 없었다. 事態가 單純한 權力型 非理에서 初有의 國政壟斷 事件으로 飛火되었고, 이 事件 自體가 모든 이슈를 집어삼키는 블랙홀이 되어 버린다. 블랙홀이라 불리던 10次 改憲 論議조차 하루도 지나지 않아 이 事件에 밀려 사라진 것은 勿論이고, 不過 며칠 前 벌어진 吳敗散터널 銃擊 事件도 完全히 묻혀 버렸다. 10月 24日과 25日 이틀 동안 彈劾 關聯 키워드가 各 포털사이트 實時間 檢索語를 掌握하는 等 國民 輿論이 마그마처럼 들끓자, 10月 25日 15時 43分頃 朴槿惠 大統領이 '崔順實의 도움을 조금 받아 온 것은 事實이다'라고 對國民謝過를 했다. 專門 그러나 錄畫 放送이었던데다 質問은 안 받고 準備한 謝過文을 2分 남짓 읽는 것에 그쳐 안 하느니만 못한 沙果가 되었다. 게다가 對國民謝過 時點에 최순실이 秘線 國政 諮問 모임을 運營해 왔다는 主張이 提起되어 逆效果만 일으켰다. # 그리고 또 다시 그날 저녁, JTBC는 前날 公開하지 않은 태블릿 PC의 追加 資料를 公開하면서, 朴槿惠 大統領의 謝過조차도 거짓임을 暴露하였다.[7] 여기에 한동안 입 다물고 있던 TV造船도 暴發한 民心을 보고 그동안 取材해온 최순실 動映像과 關聯 情報들을 放出하기 始作하였다.[8] 以後 每日 모든 言論社들이 최순실 事件을 다루고 곳곳에서 大學生과 敎授를 中心으로 時局宣言을 했으며, 憤怒한 國民들은 大統領 下野를 要求하며 서울市廳 앞 廣場을 비롯해 全國 各地에서 集會를 열고 있다. 까도 까도 나오는 최순실 特種으로 말미암아 政治界는 勿論이고 財界와 法曹界까지 崔順實의 影響力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었음이 드러나면서 國民들은 左派, 右派, 補修, 進步 等 陣營論理를 떠나 다 같이 憤怒하고 있다. 왜냐하면 國民들이 18代 大統領 選擧에서 당선시킨 候補는 최순실이 아닌 朴槿惠였기 때문이다. 朴槿惠 大統領의 支持率은 2016年 11月 4日 韓國갤럽 輿論調査 史上 最低値인 湖南 0%, 全國 5%라는 可히 衝擊인 數値로 떨어졌다. 이는 旣存 歷代 最低値였던 김영삼 前 大統領의 外換危機 以後 全國 支持率 6% 記錄을 更新한 것이다.[9] 以後 11日 20代 0%, 18日 30代 0% 等의 歷史에 남을 記錄도 남겼다. 甚至於 核心 支持層이던 60大潮差 한 자릿數로 무너졌다. 11月 25日엔 4%로 다시 한 番 歷代 最低値를 更新했다. 要約(요약): 國漢大百科(국한대백과)에서의 모든 寄與(기여)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著作者(저작자)表示(표시)-同一(동일)條件(조건)變更(변경)許諾(허락) 라이선스로 配布(배포)된다는 點(점)을 留意(유의)해 주세요 (仔細(자세)한 內容(내용)에 對(대)해서는 國漢大百科(국한대백과):著作權(저작권) 文書(문서)를 읽어주세요). 萬若(만약) 여기에 同意(동의)하지 않는다면 文書(문서)를 貯藏(저장)하지 말아 주세요. 또한, 直接(직접) 作成(작성)했거나 퍼블릭 도메인과 같은 自由(자유) 文書(문서)에서 가져왔다는 것을 保證(보증)해야 합니다. 著作權(저작권)이 있는 內容(내용)을 許可(허가) 없이 貯藏(저장)하지 마세요! 자동 편집 스팸으로부터 위키를 보호하기 위해, 다음 CAPTCHA를 풀어주세요: 取消(취소) 編輯 도움말 (새 窓(창)에서 열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