警告(경고): 로그인하지 않았습니다. 編輯(편집)을 하면 IP住所(주소)가 公開(공개)되게 됩니다. 로그인하거나 計定(계정)을 生成(생성)하면 編輯者(편집자)가 使用者(사용자)名(명)으로 記錄(기록)되고, 다른 長點(장점)도 있습니다.스팸 防止(방지) 檢査(검사)입니다. 이것을 入力(입력)하지 마세요!=== 朝鮮 === 李成桂가 高麗 王位를 簒奪하고 나라를 세우자 明나라는 李成桂를 권지고려국사라며 王으로 認定하지 않는다. 開國勢力은 明나라 皇帝에게 王으로 任命되기 위해 努力하며 箕子朝鮮을 잇는다는 意味로 朝鮮이란 國名을 提示하여 允許받고 朝鮮을 세우며 以後 明나라에 事大한다. 淸州 韓氏, 利川 徐氏, 太原 鮮于氏, 행주 奇氏는 記者와 箕子朝鮮의 王들이 祖上이라며 자랑스러워 했다. 太宗이 諸侯國의 制度로 自體的인 諸侯를 冊封하는것은 禮法上 맞지 않다고 한 以後 朝鮮은 '皇帝'에게 冊封 받은 作位인 朝鮮王 王爵하나만을 除外하고 中國 君主가 아닌 韓國 君主가 自體的으로 임명하는 一切의 王爵과 五等爵 爵位를 없애 버린다. 太宗은 "조금이라도 事大의 禮를 잃어서는 안되며, 마땅히 王보다 높여 至誠으로 天子의 使臣을 섬겨야 한다."는 遺訓을 내리며 '恩惠를 맞이 한다'는 意味의 迎恩門을 세웠다. 또한 바로 옆에는 '中和를 欽慕한다'는 意味의 使臣 迎賓館이었던 慕華館도 있었다. 이 둘은 中國에서 皇帝의 使臣이 올 때 거처가는 곳이었으며 皇帝의 臣下였던 諸侯國 朝鮮의 王은 이곳까지 直接 마중을 나가서 使臣을 맞이 했다. 이때 當然히 朝鮮王은 天子의 臣下로서 中國 使臣과 서로 맞절을 해야 했다. 宣祖는 光海君은 明나라 皇帝에게 世子로 冊封을 받지 않았다는 것을 가지고 光海君을 排斥하는 名分으로 使用했다. 壬辰倭亂과 丁酉再亂이라는 亡國의 危機를 明나라의 萬曆帝가 高麗天子 또는 朝鮮皇帝라는 비아냥까지 들어가며 22萬 大軍과 쌀 100萬섬이라는 國庫金에다 內帑金까지 消耗해서 엄청난 物量을 쏟아부으며 朝鮮을 起死回生 시키며 살려주자 朝鮮에는 再造之恩이라는 義理의 觀念이 피어난다. 以後 淸나라가 强해져서 明나라 路線이 外交的으로 不利해져도 盲目的으로 오직 明나라만 따라야 한다는 主張이 得勢하였고 名이 請에 亡하자 恩惠를 갚자는 北伐論度 일어난다. 民間에서는 丙子胡亂 以後 淸나라에 社對하여 淸國皇帝를 上國으로 모시지만 眞正한 天子는 오직 明나라 皇帝라며 마지막 明나라 皇帝였던 崇禎帝의 年號를 使用하고 碑石에는 有明朝鮮國이라며 明나라에 있는 造船國이라는 文句를 使用하며 萬曆帝를 追慕하는 大報壇과 萬東廟를 세우며 信仰에 가까운 明나라 崇拜意識이 생겨난다. 世界 最初의 兒童用 敎科書인 童蒙先習에는 '中國人이 작은 中華라고 稱讚하니 이 어찌 記者가 남긴 敎化가 아니겠는가? 아! 어린이들은 마땅히 이 것을 보고 感動하여 奮發해야 한다.'라는 대목이 있다. 開化期에 西洋 여러나라의 異樣船들이 朝鮮에 通商을 하자 請하면 朝鮮은 恒常 拒否하였는데 그 理由는 朝鮮은 淸나라의 屬國이므로 自體的인 外交 決定權의 權限이 없어서 淸나라의 許諾이 必要하다는 것이 外交上의 公式答辯이었다. 要約(요약): 國漢大百科(국한대백과)에서의 모든 寄與(기여)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著作者(저작자)表示(표시)-同一(동일)條件(조건)變更(변경)許諾(허락) 라이선스로 配布(배포)된다는 點(점)을 留意(유의)해 주세요 (仔細(자세)한 內容(내용)에 對(대)해서는 國漢大百科(국한대백과):著作權(저작권) 文書(문서)를 읽어주세요). 萬若(만약) 여기에 同意(동의)하지 않는다면 文書(문서)를 貯藏(저장)하지 말아 주세요. 또한, 直接(직접) 作成(작성)했거나 퍼블릭 도메인과 같은 自由(자유) 文書(문서)에서 가져왔다는 것을 保證(보증)해야 합니다. 著作權(저작권)이 있는 內容(내용)을 許可(허가) 없이 貯藏(저장)하지 마세요! 자동 편집 스팸으로부터 위키를 보호하기 위해, 다음 CAPTCHA를 풀어주세요: 取消(취소) 編輯 도움말 (새 窓(창)에서 열림)